9일(현지시간) 치러진 말레이시아 총선에서 마하티르 모하맛 전 총리(93)가 이끄는 야권연합인 희망연대(PH)가 승리했다. 이로써 말레이시아는 영국으로부터 1957년 독립한 이후 61년만에 처음으로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이번 총선에서 PH가 승리함에 따라 마하티르는 이르면 10일 취임선서를 하고 15년만에 다시 총리직에 오르게 됐다. 이 경우 그는 93세의 나이로 세계 최고령 국가정상이 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72)보다 21살 위이며, 에마뉘엘 마크롱(40) 프랑스 대통령 나이의 두 배 이상이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1981년부터 2003년까지 22년간 말레이시아를 철권 통치한 인물로 현 집권여당인 국민전선(BN) 소속 나집 라작 총리의 정치적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총리 퇴임 후 나집 총리를 적극 후원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나집 총리의 비자금 스캔들이 터지자 퇴진 운동을 벌이다 BN에서 축출됐다. 이후 야당 지도자로 변신해 지난해 말 PH의 총리 후보로 추대됐다.
1925년 영국 식민 치하의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난 그는 싱가포르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지역 보건소에서 의사로 근무했다. 그는 1957년 말레이시아 독립을 전후로 통일말레이국민기구(UMNO) 당원에 가입하며 정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된 그는 상원의원, 국방장관, 부총리를 거치면서 승승장구했다.
1981년 후세인 온 총리가 건강상 이유로 사임하자 말레이시아의 4대 총리로 취임한 그는 5차례 총리직을 연임하며 2003년까지 장기 집권을 이어갔다.
총리 재임기간 중 그는 눈부신 경제성장을 일군 한국과 일본의 사례를 배워야 한다는 '룩 이스트(Look East)' 정책과, 2020년까지 말레이시아를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겠다는 '와와산 2020' 정책 등을 추진하며 경제발전의 큰 기반을 마련했다.
마하티르가 추진하는 국가주도의 경제정책이 자리를 잡으면서 말레이시아는 1990년대 들어 신흥공업국 대열에 올라섰고, 국내총생산(GDP)은 1981년 250억 달러(약 27조원)에서 2003년 1100억 달러(약 120조원)로 급격히 증가했다. 마하티르는 말레이시아의 근대화를 이끈 국부(國父)로 평가된다.
하지만 그는 말레이시아의 근대화 과정에서 사법부를 권력기반의 도구로 이용하고 언론을 통제하는 등 독재와 인권탄압을 자행했다는 비판도 받아왔다. 1999년에는 차기 총리로 급부상한 안와르 이브라힘 당시 부총리를 동성애 혐의로 투옥시켜 정치보복을 일삼는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또한 '부미푸트라'로 불리는 말레이계 우대 정책을 고수해 중국계와 인도계를 차별한 점도 그의 정치적 실책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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