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 기업들은 규제에 지쳤다. 날고 뛰어봤자 기존 금융사들에 유리하게 짜여 있는 금융환경 장벽을 넘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모은다. 핀테크를 옥죄는 규제를 풀어야 세계 유수 기업으로 클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글로벌 회계 컨설팅 법인 EY의 ‘2017년 핀테크 도입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지난해 핀테크 평균 이용률은 33%로 중국(69%)의 절반 수준이다.
20개국의 핀테크 평균 이용률(33%)에는 근접한 수준이나 중국(69%)이나 인도(52%)에는 한참 못 미친다. 이를 두고 “핀테크는 기존 금융 서비스가 빈약한 중국 같은 개발도상국에서 빠르게 성장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많다. 중국은 고(高)성장, 다(多)인구, 낙후된 기존 금융서비스 등 핀테크 성장을 위한 삼박자를 모두 갖췄다는 설명이다.
일견 맞는 말이나 미심쩍다. 세계 유수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핀테크 기업이 우리나라에는 전무하기 때문이다. KPMG·H2벤처스가 지난해 발표한 ‘2017 핀테크 100’에 의하면, 핀테크 100대 기업 중 한국 기업은 간편 송금 서비스를 제공하는 토스가 유일하다. 미국(19개), 호주(10개), 중국(9개), 영국(8개)에 비하면 사막에서 바늘 찾기다.
◇ 규제, 규제, 규제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나라 핀테크 기업들은 규제에 치여 역량을 자유롭게 펼칠 수 없다. 각 금융업법의 벽을 넘을 수 없을뿐더러 포지티브(특정 항목만 허용) 방식으로 규제를 운용해 사업을 허용 받기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 금융당국이 가하는 한도 규제에 묶여 성장이 제한적이다. 김대윤 한국핀테크 산업협회장은 “피부로 느끼는 가장 큰 문제는 금융당국이 핀테크 회사들이 틈새시장만 노린다고 생각하고 틈새시장을 타깃으로 한 규제들을 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핀테크업 대부분은 한도 규제에 묶여 있다. 예컨대 해외송금업이 아닌 ‘소액 해외송금업’으로 제한을 두는 점이다. 핀테크 해외송금업체의 연간 개인 누적 송금액은 2만 달러로 제한된다. 크라우드펀딩도 마찬가지다. 크라우드펀딩으로 모집할 수 있는 금액 한도는 7억원이다. 반면, 미국과 일본은 모집 한도가 10억원, 영국은 66억원이다. P2P금융의 경우 개인신용대출은 2000만원, 그 외 상품은 1000만원의 한도 규제를 적용 받는다.
김 협회장은 “해외송금만 봐도 기존 금융기관은 수십만 달러를 보낼 수 있는데 특정 사업자만 2만 달러로 송금액을 제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핀테크의 모든 영역에 이러한 소액 규제가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핀테크 기업이 기존 금융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도록 차별적 규제를 없애야 한다”며 “한도 규제는 우리 핀테크 회사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다”고 지적했다.
◇ 해외송금업 문 살짝만 열어도 소비자 혜택은 우르르
전 세계가 핀테크 활성화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금융소비자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커서다. 우리나라도 핀테크 기업에 해외송금업 문을 살짝 열자 소비자들이 누리는 혜택이 풍성해지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7월 외국환거래법을 개정하고 핀테크 업체들이 단독으로 해외송금 서비스를 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 전에는 핀테크 업체가 은행권과 컨소시엄을 구성해야만 해외송금 서비스를 운영할 수 있었다.
1년도 지나지 않아 규제완화의 효과는 나타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올해 3월 인가를 받고 금융감독원에 정식으로 등록된 국내 소액해외송금업체는 총 18곳에 달한다.
핀테크 업체들의 해외송금업 진출이 허용된 직후인 지난해 3분기 국내 평균 해외송금수수료는 5.42%에서 4.81%로 감소했다. G20 국가 중 가장 큰 폭의 하락이다. 수수료는 앞으로 더 하락할 전망이다. 낮은 수수료와 편리한 이용법으로 무장한 신규 플레이어들의 등장에 긴장한 은행들이 뒤늦게나마 수수료를 줄이고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어서다.
◇ 광폭 행보 중국 VS 허우적거리는 한국
우리 핀테크 기업들이 규제에 허우적거리는 동안 중국 핀테크 기업들은 발 빠르게 세계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중국 핀테크 산업은 소비자 금융서비스에 대한 수요 증가와 네거티브 방식의 규제정책에 힘입어 급성장했다.
중국은 자국을 넘어 동남아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동남아 시장은 낙후된 금융, 고성장 등 핀테크가 성장할 요소들을 두루 갖췄다. 중국의 앤트파이낸셜은 지난해 4월 동남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라자다 산하 온라인 결제 플랫폼 헬로페이를 인수했다. 이후 싱가포르·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에서 알리페이의 이름을 내걸고 서비스를 시작했다. 핀타이는 지난해 10월 보험회사인 홍콩의 푸웨이그룹과 함께 싱가포르에 핀테크 회사인 피봇을 세웠다.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핀테크 업체들은 기술 개발에 전력을 다 하고 정부는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며 “신산업은 기존의 규제가 맞지 않기 때문에 규제샌드박스를 적극 도입해 선허용 후규제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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