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헤지펀드 엘리엇에 뿔난 한국상장회사협의회·코스닥협회가 현대자동차그룹을 지지하고 나섰다. 엘리엇은 정부조차 바람직하다고 평가한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에 어깃장을 놓고 있다. 상장사협·코스닥협은 이를 '상시적인 경영권 위협'이라고 지적했다.
◆경영권 방어장치로 먹튀 막아야
국내 상장법인 2000여곳을 대표하는 상장사협·코스닥협은 16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현대차그룹이 내놓은 자발적인 지배구조 개선안을 공동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상장사협·코스닥협은 "잊을 만하면 일부 행동주의 펀드가 경영에 간섭하고 경영권을 위협한다"며 "경영권 방어장치 도입을 더 미루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요구하는 대표적인 경영권 방어장치는 차등의결권과 포이즌필이다. 차등의결권은 특정 주식에만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해 경영권을 견고하게 해준다. 포이즌필은 기존 주주에게 신주를 싸게 살 권리를 주는 것이다. 모두가 적대적인 인수·합병(M&A)을 방어하기 위한 제도다.
상장사협·코스닥협은 반기업정서를 악용해 배를 불리는 투기자본을 견제해줄 것을 요구해왔다. 아직까지는 경영권 방어장치가 자사주 매입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2003년 'SK·소버린 사태', 2005년에는 'KT&G·칼아이칸 사태', 2015년 '엘리엇·삼성 사태'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리고 올해에는 엘리엇이 현대차를 타깃으로 삼았다.
상장사협은 “SK와 KT&G 사태로 투기자본이 얻은 이익만 1조원을 넘어선다"며 "정부가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선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 충격이 더욱 크다"고 말했다.
얼마 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현대차그룹에 대한 엘리엇 측 요구는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엘리엇이 바라는 지주 전환은 공정거래법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 같은 산업자본은 현행법상 지주를 세워 금융사(현대캐피탈·현대카드·현대라이프생명·현대커머셜·현대차투자증권)를 거느릴 수 없다.
윤상직 자유한국당 의원은 전날 경영권 방어장치 도입을 골자로 하는 '엘리엇 방지법'(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우리 기업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투기자본을 견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캐스팅보터 역할 커진 국민연금
현대차그룹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캐스팅보터 역할은 어느 때보다 커졌다.
오는 29일 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는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분할·합병안을 상정한다.
현대모비스 주식을 가장 많이 가진 곳은 현재 기아자동차(16.9%)다. 여기에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7.0%)과 현대제철(5.7%), 현대글로비스(0.7%) 지분을 합쳐도 총 30.2%로 과반에는 한참 못 미친다.
국민연금은 9.8% 주식을 가지고 있다. 단일주주로는 기아차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전체 외국인 투자자가 보유한 지분은 48.6%다.
주총이 성립되려면 의결권을 가진 주주가 3분의1 이상 참석해야 한다. 다시 참석 지분 가운데 3분의2 이상이 찬성하면 안건은 통과된다.
국민연금이 현대차그룹에 유리하게 의결권을 행사한다면 외국계 자본에 이길 공산이 크다.
◆과장된 공포일 뿐이란 지적도
외국 투기자본을 둘러싼 논쟁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과장된 공포'라는 지적도 분명히 존재한다. 소수 지분을 가진 투기자본이 경영권을 침해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공정거래법상 대기업집단을 보면 총수 측 내부지분율이 2011년 53.5%로 반을 넘어섰고, 2017년에는 58.3%까지 늘었다. 내부지분은 총수 일가뿐 아니라 계열사, 임원, 자사주까지 합친 것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투기자본이 아무리 주식을 매집하더라도 과반 지분을 쥔 대주주를 위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유지웅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엘리엇이 보유한 현대차그룹 지분은 1.4%에 불과하다"며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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