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남측 취재진의 참관을 무산시킨 것은, 한·미 정상회담과 내달 12일 열리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대(對)남 압박을 통해 미국의 정책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22일 외신 및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는 예정대로 열릴 것으로 보인다.
남측 취재진을 제외한 미국과 영국·러시아·중국 등 4개국 외신기자들은 22일 오전 9시45분께(중국시간) 베이징에서 고려항공 전세기인 JS622편을 통해 원산으로 들어갔다.
북한의 핵실험장 폐기 방침이 처음 나온 것은, 지난달 20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주재하에 개최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다.
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5월 중 핵실험장 폐기를 진행할 것이라며 한국과 미국의 전문가와 언론인을 초청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북한이 지난 15일 남측에 통지문을 보내 통신사와 방송사 기자를 각각 4명씩 초청한다고 알리며 이를 공식화했다.
그러나 북한이 16일 새벽 한·미연합공중훈련인 맥스선더와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의 발언 등을 문제삼으며, 당일 예정된 남북 고위급회담을 취소함으로써 남북관계가 다시 얼어붙는 모양새다.
이후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엄중한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남조선의 현 정권과 다시 마주앉는 일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는 등 대남 압박의 강도를 높여가더니, 끝내 남측 취재진의 방북을 불허했다.
결국 북한은 21일에도 남측 취재단 명단을 접수하지 않았다. 하지만 초청 대상에 올랐던 남측 취재진 8명은 같은날 중국 베이징에 도착, 남북 협의 과정을 지켜보며 대기했다. '만약'을 위한 준비였다.
결국 22일 남측 기자들은 발길을 돌리게 됐고, 정부는 유감 성명을 발표했다.
정부는 이날 조명균 통일부 장관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북측이 5월 23일과 25일 사이에 예정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에 우리측 기자단을 초청했음에도, 북측의 후속조치가 없어 기자단 방북이 이뤄지지 못한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북한의 이런 행보는 한·미 정상회담과 내달 12일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대미 협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많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측을 배려하는 메시지를 강화하라는 의미와 함께 미국에도 '우리 체제를 존중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판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은 미국을 향해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북·미 정상회담 재고' 발언을 내놓긴 했지만, 판을 뒤엎지는 않으려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오는 25일 종료되는 한·미연합공중훈련이 모두 종료되면 남북관계가 다시 풀릴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몽니'라는 표현을 쓸 수도 있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한번 브레이크를 걸지 않으면 계속 끌려간다는 생각에, 전술적 차원으로 행동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한을 못박은 첫번째 조치가 무산되면서 판문점 선언은 시작부터 빛이 바랬다. 내달 남북이 공동 개최할 예정이던 6·15민족공동행사 준비도 멈춰선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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