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 후 62일 만에 모습을 드러낸 이명박 전 대통령은 10분간 주어진 모두발언에서 “비통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며 “검찰이 무리한 기소를 했다”고 말을 시작했다.
이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가 시작된 이후 ‘진술을 거부하라’고도 하고, 기소 후엔 ‘재판도 거부하라’는 주장이 많았다”며 “하지만 아무리 억울하더라도 일국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그런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재판을 전면 보이콧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달리 재판에 성실히 임할 계획임을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은 검찰이 제시한 증거에 대해 증인들을 따로 불러 재판정에서 진위를 다투지 않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그는 “증인 대부분은 전대미문의 세계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저와 밤낮없이 일한 사람들”이라며 “그들을 법정에 불러 추궁하는 건 가족이나 본인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고심 끝에 증거를 다투지 말아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증거를 다투지 않기로 함에 따라 재판 속도가 그만큼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이 전 대통령은 “변호인에게 억울함을 객관적 자료와 법리로 풀어달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증거조사와는 별개로 치열한 법리 공방을 예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전 대통령은 16개에 달하는 공소 사실 중 유일하게 다스 실소유주 의혹에 대해선 입장을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은 “1985년 제 형님(이상은)과 처남이 회사를 만들어 부품 사업에 참여했다”며 “그 후 30여년간 회사 성장 과정에서 소유, 경영 관련해 어떤 다툼도 없던 회사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스럽다”고 말해 본인과 다스의 관련성을 부인했다. 다스 비자금 횡령금액이 350억원에 달한다고 알려진 만큼 실소유주 의혹에 선을 긋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다.
110억원에 달하는 뇌물에 대해선 “변호인이 변론 과정에서 모든 사실을 설명할 것이므로 줄이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 전 대통령은 과거 서울시장 시절 업적 등을 밝히면서 뇌물‧횡령 혐의에 연루된 것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서울시장 시절 월급 전액을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하고, 하이 서울 장학금을 만든 것은 어머니와의 약속 때문”이라며 “2007년 (대선) 출마 선언하며 저의 전 재산을 환원해 장학사업을 약속했고 지금 그렇게 실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대통령 시절에 대해선 “당선 후 전경련을 찾아가 대기업 회장들을 만나 선거를 부담 없이 치렀으니 정부와 기업 간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자고 했다”며 “경제인들과 수도 없이 회의했어도 개별 사안을 가지고 단독으로 만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강조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 사면과 관련해서 삼성 측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공소사실에 대해선 “충격과 모욕”이라고 말했다. 그는 “평창올림픽 유치에 세 번째 도전하기로 한 후 이건희 회장 사면을 강력하게 요구받고 정치적 위험이 있었지만, 국익을 위해 삼성 회장이 아닌 이건희 IOC 위원의 사면을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 전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구체적 사실에 관해서는 제가 아는 바를 변호인에게 모두 말했고 앞으로 재판과정에서 말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 1심 최대 구속 기간인 오는 10월 9일까지 총 22차례 공판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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