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⓵ 무타 카즈에 교수 "잠자는 숲속의 공주, 동의 없는 키스는 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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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용 기자
입력 2018-06-02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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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안부 관련 단편영화 제작 중"

무타 카즈에 일본 오사카대 인간과학대학원 교수.  [사진=무타 카즈에 교수 제공]
 

'백설 공주와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성희롱 동화다.'

무타 카즈에 일본 오사카대 인간과학대학원 교수가 지난해 12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이다. 이 글은 일본에서뿐 아니라 해외 각국에서도 논쟁을 일으켰다. 무타 교수에 따르면, 이 글은 지하철에서 자고 있는 여성에게 키스한 일본 남성이 체포됐다는 기사를 접하고 작성했다. 무타 교수는 사회학·젠더 분야에서 일본 최고의 학자로 꼽힌다.

무타 교수는 아주경제와 서면 인터뷰에서 "자고 있는 여성이라는 말에 떠오른 것이 '백설 공주'와 '잠자는 숲속의 공주'였다"며 "'갑작스러운 키스로 눈을 뜬 공주가 왕자님과 결혼해 행복하게 산다는 기존의 관점을 바꿔서 바라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왕자님이라고 해도 그는 낯선 남자인데, 자고 있는 여성에게 동의 없이 마음대로 키스를 한 것"이라며 "이는 준 강제 추행 혐의와 다르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 글을 SNS에 게재한 무타 교수는 "꿈을 부순다", "소설과 현실을 구분 못하냐"는 등의 비판을 받았다. 그는 "이런 분들에게 페미니즘 문학 비평이라는 장르를 소개하고 싶다"며 "비평은 작품의 가치를 깎아내리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은 물론 이야기에 내재된 사회적 의제를 파악할 수 있게 만든다"고 응수했다.

◆ 일본 성희롱 재판 1호 '후쿠오카 소송' 참여 후 여성 운동가의 길 걸어

"과거 가정폭력문제가 그랬듯 성폭력, 성희롱도 어디에서나 있을 수 있고,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여겨지는 회색지대의 문제입니다. 관습이라 여기고 간과했던 문제점이나 차별을 짚어내고 목소리를 내는 것은 젠더 연구가이자 사회학자로서 제가 맡은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무타 교수는 지난 30년간 학자이자 여성 운동가로서의 길을 걸어온 배경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무타 교수는 1989년 일본의 1호 성희롱 재판인 후쿠오카 소송에 약 3년간 깊숙이 관여했다. 재판부는 이 소송의 판결에서 언어적 성희롱으로 인한 피해를 최초로 인정했다. 이 소송으로 일본에서 '성희롱'이라는 용어가 통용됐다. 이전에 일본에서 성희롱은 '단순 괴롭힘' 이나 '성적 괴롭힘' 이라는 표현으로 치부됐다.

이 소송을 기점으로 무타 교수의 진로도 달라졌다. 무타 교수의 연구 방점은 가족과 사회관계였지만, 성희롱 관련 주제를 파고들며 여성 운동가로 변신했다. 무타 교수는 1995년 설립된 캠퍼스 성희롱 전국 네트워크의 주요 구성원이 됐다. 

무타 교수의 활동영역은 온·오프라인을 넘나든다. 그는 2009년 여성행동네트워크(WAN·Women's Action Network)설립에도 이바지했다. WAN은 일본 여성단체들의 모임과 활동 내용을 알리고 이들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NPO)다. 그는 이 단체의 초대 이사장직을 내려놓은 2011년 이후에도 주요 운영진으로 활동 중이다.

무타 교수는 "온라인이 남녀평등의 진전을 도울 강력한 도구라고 생각한다"며 "페미니즘이나 여성운동과 거리가 먼 사람도 온라인을 통해서는 관련 정보를 접하기가 쉽다. 또 온라인 공간에서 점점 늘어나고 있는 각종 여성비하와 잘못된 페미니즘 정보에 대항해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아낼 공간이 필요하다"며 온라인 활동의 이유를 말했다.

◆ '미투 운동'의 피해자 지원 시스템과 사회적 인식 개선 필요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시작된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일본판 '미투 운동'의 시작은 한국보다 빨랐지만, 잠잠히 지나갔다.

무타 교수는 이에 대해 "일본에서는 피해자도 잘못이 있다는 사고방식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며 "피해자가 비난받는 경우가 많아 '미투 운동'이 퍼져나가기 힘든 상황"이라고 답했다. 이어 그는 "피해자는 정신적 충격으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며 "'사실이라면 피해를 즉시 호소하거나, 싫었다면 죽도록 저항해야 한다' 등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과 편견이 피해 여성을 침묵하게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5월 프리랜서 기자 이토 시오리씨가 2년 전 자신이 겪었던 성폭행 사건을 공개했다. 성폭행 피해자가 실명으로 기자회견을 연 첫 사례였지만, 일본 사회는 침묵했다. 반면 온라인에서 '꽃뱀' , '일본의 수치' 라는 비판과 가족·지인의 사진이 공개되는 등 이토씨는 2차 피해에 시달렸다.

무타 교수는 이토씨의 사건이 2차 피해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종의 피해자 때리기로 일본에서 이러한 2차 피해가 자주 발생하는데, 이를 경계하고 비판해야 한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미투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 다각적인 지원"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이 조사한 일본의 성 평등 지수는 144개국 가운데 114위에 그쳤다. 2016년 일본 정부의 조사결과를 인용한 미국 국무부의 '2017년 세계 인권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직장 여성 10명 중 3명이 일터에서 성희롱 피해를 겪은 것으로 조사됐다.

◆ 일본 우익 언론의 표적이 되기도

무타 교수는 1년에 2번 이상 한국을 정기적으로 찾아 성폭력 등 젠더 이슈와 관련된 학술모임, 포럼 등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위안부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그는 "최근 한국에서 '미투 운동'이 관심을 받았는데, 이는 위안부 문제에 오랜 기간 몰두해 온 사회적 환경이 영향을 준 것이라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무타 교수는 지난 3월 위안부 피해자 시설인 경기 광주 나눔의 집을 찾고, 수요 집회에도 참가했다. 그는 "한국에는 친한 연구자들이 많아 자주 방문한다"며 "지난 3월에 촬영한 영상과 사진으로 위안부 문제를 다룬 단편영화를 제작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무타 교수의 행보에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지난해 12월 일본 일간지 산케이 신문은 '결탁하는 반일 시리즈' 중 하나로 무타 교수의 한국 관련 활동과 연구를 비판하는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무타 교수는 "이러한 공격은 헌법 23조가 정하는 학문의 자유에 반할 뿐 아니라 여성에 대한 차별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고 산케이 신문 기사에 문제를 제기했다. 

학생들 사이에서 무타 교수의 별명은 '무차부리 교수'다. 무차부리(無茶振り)는 대답하기 곤란한 화제를 던진다는 뜻이다. 그가 수업 시간에 종종 학생들에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져 붙여진 별명이다. 

때때로 불편하지 않냐는 질문에 무타 교수는 "공격과 비난만큼 '잘 말해줬다'고 해주는 지지와 응원도 많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며 "바보 같은 지적을 당해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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