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핑핑 돌 지경이다. 북·미 정상회담이 취소됐다 하루 만에 다시 추진되는가 하면, 판문점에선 남북 정상의 두 번째 깜짝 만남이 이뤄졌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바야흐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 포커게임이 갈수록 후끈 달아오르는 모양새다.
작금의 게임에서 가장 눈길을 끈 이는 단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을 상대로 공개서한이란 묘한 방식으로 회담취소를 전격 선언함으로써 흔들리던 주도권을 확실하게 되찾은 것이다. 그동안 포커판은 김 위원장이 중국으로 날아가 시진핑 주석과 찰떡 공조를 과시한 뒤로 북측의 어깃장만 부각되는 양상이었다. 예정됐던 남북 고위급회담을 당일 아침 일방적으로 취소하는가 하면, 미국 펜스 부통령 등을 험악하게 비난하고 북·미 정상회담 재고까지 언급했다.
트럼프의 회담 취소 결정에 북한은 이례적으로 낮은 자세로 공손하게 응대했다.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은 담화를 내고 "트럼프 대통령의 용단을 내심 높이 평가해왔다. 트럼프 모델에 대해 은근히 기대도 했었다"고 치켜세웠다. 그리곤 “언제 어떤 방식으로든 만나자”고 매달렸다. 트럼프는 기다렸다는 듯 “생산적이고 좋은 뉴스”, “6월12일 싱가포르 회담은 재추진될 수 있다”고 즉각 받아들였다.
이로써 정상회담을 앞둔 미국과 북한의 기싸움 1라운드에선 트럼프가 특유의 협상술로 기선을 제압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트럼프는 30여년 전인 1987년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이란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32주간 ‘뉴욕타임스’ 논픽션 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를 정도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그는 거래의 기술로 '크게 생각하라', '사업을 재미있는 게임으로 만들어라' 등 11개 원칙을 제시한다. 그중엔 ‘되받아치라’는 항목도 있다. “··· 상대방이 협상을 주도하려 할 때는 끌려다니지 말고 판을 뒤집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방이 하자는 대로 하면 자신에 불리한 결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트럼프가 이번에 선보인 기술이 바로 ‘판 뒤집기’다. 북한이 그동안 즐겨 쓰던 초식이었는데, 이번엔 거꾸로 그 기술에 당했다. 북한의 핵실험 갱도 파괴 이벤트 직후에 회담 취소를 발표한 것도 절묘했다. 핵실험장 폐기라는 실질적 이득은 손에 넣고도 북한의 이벤트는 회담 취소에 가려져 빛이 바래게 하는 효과를 거뒀다.
어쩌면 트럼프는 이번 게임의 진짜 상대자로 시진핑을 염두에 뒀을 수 있다. 그는 지난 22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단독회담에 앞서 가진 즉석 기자회견에서 “시진핑 주석은 세계 최고 수준의 포커 플레이어”라며 “아마도, 그 분야에선 나도 못지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이 시진핑을 만난 뒤 태도가 변했다는 말도 했다. 트럼프의 머릿속은 시진핑과의 게임 계산으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보여진다.
트럼프의 ‘판 뒤집기’ 한 수는 미국 내의 비판적 여론 때문에 나왔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 내에는 “너무 성급하게 회담 제의를 수락했다”는 비판과 “북한이 핵을 포기할 리 없다”는 회의론이 무성했다. 결과적으로 트럼프는 김정은과 시진핑에게 멋지게 ‘한 방’ 날렸고, 미국 내 부정적 여론까지 잠재우는 1타 3매의 묘수를 둔 셈이다.
트럼프는 국제정치판을 게임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북·미 회담 재개를 시사하는 자리에서 한 기자가 북한이 게임을 하고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우리 모두는 게임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너무 노골적이라 국제 정치의 품격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이 없지 않지만, 그가 판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한 점잖게 뒷짐만 지고 바라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북한 관리들은 트럼프에 대해 열정적으로 공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비서실장을 지낸 조너선 파월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말과 올 초 두 차례 북한을 방문했는데 북한 관리들이 트럼프가 저술한 ‘거래의 기술’과 ‘분노와 화염’을 열심히 읽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래서일까. 이번에 김계관의 담화를 통해 보여준 ‘공손한’ 태도는 국제사회의 예상을 완전 뒤집는 나름의 묘수라고 볼 수 있다. 종전 같으면 온갖 욕설을 동원하여 강 대 강으로 맞받아쳤을 터인데 이번엔 거의 굴복하는 모습으로 나왔다. 자존심 강하기로 첫손 꼽히는 북한의 낮은 자세는 북 정권 수립후 처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가뜩이나 북한에게 미국은 최대 적이자 ‘웬수’ 아닌가.
북한의 절박감이 측은하게 읽혀지는 대목이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북한이 트럼프의 ‘기술’을 완전하게 파악하고 한 발 물러서준 영악한 대응은 아닌지 짚어볼 필요도 있다. 북한이 한 방 얻어맞긴 했지만 결코 손해본 것은 없다. 오히려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실리를 확실하게 다시 챙겼다. 트럼프의 강펀치를 유연하게 받아 넘기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 것은 아닐까.
트럼프의 럭비공 외교로 한반도 포커판이 크게 출렁이고 있다. 술수가 난무하는 게임판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북·미 중재자 역할에 고군분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순수하고도 진지한 태도는 트럼프의 뻔뻔함, 야비함과 비교되며 돋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론 조마조마한 것도 사실이다. 특히 트럼프가 북·미 회담 취소를 일방 발표할 때까지 우리 정부가 까맣게 몰랐다는 사실은 많은 걱정을 갖게 한다. ‘한국 패싱’에 대한 우려가 컸다. 그나마 김정은 위원장과의 깜짝 정상회담을 이끌어 냄으로써 ‘운전자’의 면모를 잃지 않은 게 큰 다행이다.
거래의 달인이라는 트럼프를 한 축으로 하여 벌이는 ‘포커게임’이다. 보다 영악하게, 또 정밀하게 판을 읽고 판을 장악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기술’의 핵심은 ‘게임은 이겨야 한다’이다.
작금의 게임에서 가장 눈길을 끈 이는 단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을 상대로 공개서한이란 묘한 방식으로 회담취소를 전격 선언함으로써 흔들리던 주도권을 확실하게 되찾은 것이다. 그동안 포커판은 김 위원장이 중국으로 날아가 시진핑 주석과 찰떡 공조를 과시한 뒤로 북측의 어깃장만 부각되는 양상이었다. 예정됐던 남북 고위급회담을 당일 아침 일방적으로 취소하는가 하면, 미국 펜스 부통령 등을 험악하게 비난하고 북·미 정상회담 재고까지 언급했다.
트럼프의 회담 취소 결정에 북한은 이례적으로 낮은 자세로 공손하게 응대했다.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은 담화를 내고 "트럼프 대통령의 용단을 내심 높이 평가해왔다. 트럼프 모델에 대해 은근히 기대도 했었다"고 치켜세웠다. 그리곤 “언제 어떤 방식으로든 만나자”고 매달렸다. 트럼프는 기다렸다는 듯 “생산적이고 좋은 뉴스”, “6월12일 싱가포르 회담은 재추진될 수 있다”고 즉각 받아들였다.
이로써 정상회담을 앞둔 미국과 북한의 기싸움 1라운드에선 트럼프가 특유의 협상술로 기선을 제압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트럼프는 30여년 전인 1987년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이란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32주간 ‘뉴욕타임스’ 논픽션 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를 정도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트럼프가 이번에 선보인 기술이 바로 ‘판 뒤집기’다. 북한이 그동안 즐겨 쓰던 초식이었는데, 이번엔 거꾸로 그 기술에 당했다. 북한의 핵실험 갱도 파괴 이벤트 직후에 회담 취소를 발표한 것도 절묘했다. 핵실험장 폐기라는 실질적 이득은 손에 넣고도 북한의 이벤트는 회담 취소에 가려져 빛이 바래게 하는 효과를 거뒀다.
어쩌면 트럼프는 이번 게임의 진짜 상대자로 시진핑을 염두에 뒀을 수 있다. 그는 지난 22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단독회담에 앞서 가진 즉석 기자회견에서 “시진핑 주석은 세계 최고 수준의 포커 플레이어”라며 “아마도, 그 분야에선 나도 못지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이 시진핑을 만난 뒤 태도가 변했다는 말도 했다. 트럼프의 머릿속은 시진핑과의 게임 계산으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보여진다.
트럼프의 ‘판 뒤집기’ 한 수는 미국 내의 비판적 여론 때문에 나왔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 내에는 “너무 성급하게 회담 제의를 수락했다”는 비판과 “북한이 핵을 포기할 리 없다”는 회의론이 무성했다. 결과적으로 트럼프는 김정은과 시진핑에게 멋지게 ‘한 방’ 날렸고, 미국 내 부정적 여론까지 잠재우는 1타 3매의 묘수를 둔 셈이다.
트럼프는 국제정치판을 게임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북·미 회담 재개를 시사하는 자리에서 한 기자가 북한이 게임을 하고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우리 모두는 게임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너무 노골적이라 국제 정치의 품격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이 없지 않지만, 그가 판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한 점잖게 뒷짐만 지고 바라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북한 관리들은 트럼프에 대해 열정적으로 공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비서실장을 지낸 조너선 파월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말과 올 초 두 차례 북한을 방문했는데 북한 관리들이 트럼프가 저술한 ‘거래의 기술’과 ‘분노와 화염’을 열심히 읽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래서일까. 이번에 김계관의 담화를 통해 보여준 ‘공손한’ 태도는 국제사회의 예상을 완전 뒤집는 나름의 묘수라고 볼 수 있다. 종전 같으면 온갖 욕설을 동원하여 강 대 강으로 맞받아쳤을 터인데 이번엔 거의 굴복하는 모습으로 나왔다. 자존심 강하기로 첫손 꼽히는 북한의 낮은 자세는 북 정권 수립후 처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가뜩이나 북한에게 미국은 최대 적이자 ‘웬수’ 아닌가.
북한의 절박감이 측은하게 읽혀지는 대목이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북한이 트럼프의 ‘기술’을 완전하게 파악하고 한 발 물러서준 영악한 대응은 아닌지 짚어볼 필요도 있다. 북한이 한 방 얻어맞긴 했지만 결코 손해본 것은 없다. 오히려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실리를 확실하게 다시 챙겼다. 트럼프의 강펀치를 유연하게 받아 넘기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 것은 아닐까.
트럼프의 럭비공 외교로 한반도 포커판이 크게 출렁이고 있다. 술수가 난무하는 게임판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북·미 중재자 역할에 고군분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순수하고도 진지한 태도는 트럼프의 뻔뻔함, 야비함과 비교되며 돋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론 조마조마한 것도 사실이다. 특히 트럼프가 북·미 회담 취소를 일방 발표할 때까지 우리 정부가 까맣게 몰랐다는 사실은 많은 걱정을 갖게 한다. ‘한국 패싱’에 대한 우려가 컸다. 그나마 김정은 위원장과의 깜짝 정상회담을 이끌어 냄으로써 ‘운전자’의 면모를 잃지 않은 게 큰 다행이다.
거래의 달인이라는 트럼프를 한 축으로 하여 벌이는 ‘포커게임’이다. 보다 영악하게, 또 정밀하게 판을 읽고 판을 장악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기술’의 핵심은 ‘게임은 이겨야 한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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