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도를 이탈할 뻔한 북·미 정상회담이 극적으로 재추진 동력을 확보하면서 중국도 회담 무산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다만 중국을 배제한 남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당분간 한반도 비핵화 과정에서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울 전망이다.
북·중 간 과도한 유착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큰 만큼 일단 은인자중하면서 중국 역할론 카드를 다시 꺼낼 기회를 엿볼 것으로 보인다.
◆남·북·미 3자 회담 재부상, 불편한 中
27일 문재인 대통령이 북·미 회담 성사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긍정적으로 화답하면서 중국도 한숨 돌리는 분위기다.
자칫 회담이 무산됐다면 북·미 협상의 판을 깬 장본인으로 몰릴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2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포커 플레이어'로 지칭하며 북·중 정상회담 이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태도가 바뀌었다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낸 바 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미국이 북·미 회담 취소를 알리자 북한이 대화 의지를 전달하면서 한반도 정세가 빠르게 호전되고 있다"며 "이 같은 정세가 심각하게 악화될 가능성은 비핵화가 지속적으로 추진될 가능성보다 낮다"고 환영의 뜻을 전했다.
하지만 이날 문 대통령의 입에서 중국이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표현이 다시 튀어나왔다. 문 대통령은 "북·미 회담이 성공할 경우 남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종전 선언이 추진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날 남북이 공동 발표한 '판문점 선언' 때부터 중국은 남북·미 3자 회담이라는 표현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 왔다. 한반도 정세 변화 과정에서 중국이 배제되는 '차이나 패싱' 논란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몸 낮추고 사태 관망 가능성 높아
문 대통령의 '3자 회담' 언급은 의도적인 발언일 수 있다. 중국의 지나친 북한 끌어안기가 북·미 비핵화 협상에 걸림돌로 작용한 데 대한 한·미 정상의 불편한 심기가 담긴 표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베이징 소식통은 "차이나 패싱론에 마음이 급했던 중국이 북한의 뒷배를 자처하며 밀월 관계를 형성하는 모습이 미국을 불편하게 했을 것"이라며 "문 대통령의 언급은 북·미 회담 전까지 중국이 자제해 달라는 요청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중국도 당장은 큰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북·미 회담이 결렬될 경우 중국이 받을 타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우선 경협을 미끼로 겨우 복원한 북한과의 관계가 다시 틀어질 수 있다. 회담 결렬은 곧 대북 압박 강화를 의미하며 중국이 국제사회와 동떨어져 북한 지원에 나서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현재 진행 중인 미·중 무역 협상에도 악영향을 미칠 공산이 크다. 중국 통신장비 제조업체인 ZTE 관련 제재 완화 등을 거론하던 트럼트 대통령이 다시 공세로 전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 다른 베이징 소식통은 "북·미 협상의 판이 완전히 깨지는 것은 중국도 바라지 않는 시나리오"라며 "중국 지도부가 긴급 회의를 진행 중이라는 소식도 흘러나오는데, 당분간 은인자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숨고르기 뒤 역할론 재부상 전망
중국이 숨을 고르며 사태를 관망하는 자세로 전환하더라도 한반도 정세 변화 과정에서 아예 발을 뺄 가능성은 낮다. 북·중 및 한·중 관계는 중국의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향후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둘러싸고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여야 하는 입장에서도 한반도 문제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대할 수는 없다.
시 주석에 이어 중국 권력 서열 2위로 평가받는 왕치산(王岐山) 국가부주석은 한반도 문제가 중국의 이해관계와 밀접하게 연계돼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중화권 언론 보도에 따르면 왕 부주석은 지난 25일(현지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국제경제포럼에 참석해 이같이 밝혔다.
왕 부주석은 "한반도 안전 상황은 중국의 이해와 관련돼 있고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북·미 회담 이후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가 본격화하면 중국 역할론이 재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남북·미 간 종전 선언이 이뤄지고 평화 협정 체결 논의가 시작되면 중국도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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