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을 든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들었다. 파탄 경제에 따른 사회적 불안감을 해소해야 한다며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자리였다. 한국과 비슷한 상황으로 보이지만 결과는 정반대다. 정권은 임기를 연장했고, 촛불은 희미해졌다. 베네수엘라 얘기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베네수엘라의 운명이 어디로 향할지 국제사회의 눈이 쏠리고 있다. 마두로 대통령은 앞으로 6년간 임기를 보장받는다. 그러나 미국 등 국제사회의 추가 제재 움직임이 가시화되면서 경제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베네수엘라는 대표적인 초인플레이션 국가다.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은 꽤 오랫동안 물가 지표를 발표하지 않고 있지만 현지 정치권과 각국 전문가들은 이미 그 심각성을 지적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야권은 지난해 베네수엘라의 연간 누적 물가 상승률이 2616%를 넘는다고 밝혔었다.
존스홉킨스대학의 스티브 행키 교수는 최근 경제전문매체 포브스에 기고한 글을 통해 "베네수엘라의 물가는 평균 17.5일마다 2배 이상 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4월 기준 물가상승률이 1만6428%를 기록한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놓은 올해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률 전망치(1만3000%)를 벌써 뛰어넘은 것이다.
베네수엘라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정책과 암시장 등 음지 경제가 되레 물가 상승을 부추긴다는 분석도 나온다. 엘 나시오날 등 현지 언론은 정부가 최저임금을 155% 인상했다고 보도했다. 올해 들어 벌써 세 번째 인상이다. 다만 정부가 환율을 정하는 이른바 '고정환율제'가 유지되는 한 현금 유통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나마 지정학적 위기 등의 영향으로 3년 6개월여 만에 고공행진하고 있는 국제유가가 베네수엘라 경제의 디딤돌이 될 수 있을지 기대감이 모아진다.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석유 의존국인 만큼 부활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26일(현지시간) 자국에 수감돼 있던 미국인 부부를 석방한 것도 미국의 경제 제재를 막고 변화를 맞기 위한 새로운 제스처라는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정작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희망을 갖게 될지는 미지수다.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등에 따르면 최근 2년 사이 경제난을 피해 콜롬비아와 브라질 등으로 이주한 국민은 약 15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미 온몸으로 마두로 경제의 실패를 견뎌왔던 만큼 2기 마두로 체제에 앞서 이웃 국가로 난민 신청하는 베네수엘라 국민이 부지기수로 늘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베네수엘라 경제는 주변국가를 비롯해 신흥국 경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현지 정치·경제 상황에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이유다. 변화와 낙오의 갈림길 앞에 서 있는 베네수엘라는 어떤 미래를 맞게 될까. 수많은 베네수엘라의 촛불이 가졌던 염원이 한국과 같은 극적인 결과를 가져올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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