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주 52시간 근무제도의 기본적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정부의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산업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채 획일적으로 적용되는 정책에 근로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실질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특히 대기업 위주로 근로시간 단축 제도가 정착하면서 중소기업 근로자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본연의 취지에도 맞지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김용희 숭실대 교수는 "정부의 52시간 근무제의 근본적인 취지는 바람직하나, ICT 산업 특성상 연장근로가 일상화돼 있는 상태에서는 오히려 근로자들의 임금만 줄어드는 단점이 초래될 수도 있다"면서 "ICT 산업에서만이라도 플렉시블 타임제와 같은 유연근무에 대한 법제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명준 건국대 교수는 "대표적으로 게임 산업의 경우 일반 산업과 달리 신작 출시에 앞서 집중적으로 근무해야 하는 시기가 있다"면서 "이같은 업계 상황을 반영하지 않는다면 게임을 포함한 미래 ICT 산업의 진흥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게임, SW 분야의 경우 제품 출시 시기에 따라 업무 강도가 수시로 변하는 등 초과근로가 불가피한 경우가 빈번히 발생한다. 24시간 365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정보보호 업계 또한 휴일 근무와 야근 근무가 필수로 자리잡힌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급작스런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이 되레 산업을 옥죄는 규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민화 KAIST 교수는 "선진국은 근로시간이 유연하고 노동시장이 경직돼 있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다르다"며 "생산성 향상 없는 근로시간 단축은 기업을 한계 상황에 몰게 되는 매우 거친 규제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재홍 숭실대 교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양극화를 해소하지 않은 상태에서 근로시간 단축은 무의미하다"며 "해외 선진국처럼 노동 유연화가 갖춰진 환경을 구축하는 게 우선이며, 중소기업을 위한 구체적인 보상책이 마련되야 한다"고 제언했다.
근로시간 단축을 서둘러 도입하기에 앞서 전반적인 유연한 고용 환경을 구축하는 게 우선이라는 얘기다. 주요 선진국들도 오랜 시간 근로시간 단축 정착을 위해 노력했으며, 정부는 각종 보완책을 펴나갔다.
독일의 경우 기업이 개별노조 단체협약으로 주당 근로시간을 정하고 있으며, 프랑스는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고용을 창출하는 기업에 대해 정부가 사회보장분담금을 삭감해주는 형태로 보조금을 주고 있다. 네덜란드도 1980년대 바세나르 협약 등을 통해 주 38시간의 근로시간을 주 36시간으로 단축하고, 일자리를 늘렸다.
이에 대해 정부는 ICT 업계의 애로사항을 반영한 주 52시간 근무제 개선책을 6월 중으로 발표한다는 입장이다. 김용수 과기정통부 차관은 "업계의 애로사항 등의 의견은 고용부와 긴밀히 협조해 보완책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주 52시간 근무제도 도입으로 일자리 증가는 물론, 기업의 생산성을 늘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근로자 1인당 평균 근로시간은 멕시코에 이어 2위에 달하며, 노동 생산성은 22개 조사 대상국 중 17위에 머무른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근로시간 단축 시행으로 일자리 14만~18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주당 노동시간이 1% 감소할 때마다 노동생산성은 0.79% 높아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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