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없는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면 일본과의 수교도 시간문제다. 4강에 의한 남북한 교차승인이 마침내 이뤄져 한반도와 동북아는 70년 대결의 시대를 끝낼 수 있게 된다. 새 시대는 적어도 지금보다는 안정적이고 평화로울 것이다. 남북은 군비 대신 삶의 질을 놓고 경쟁하게 되고 우리가 갈구했던 대륙 진출의 문도 활짝 열릴 것이다. 내부적으론 일찍이 백낙청 교수가 지적한 이른바 ‘분단체제’도 해소돼 남북 간 적대적 공생관계에 기생해온 구(舊)체제의 기득권구조도 해체될 것이다. 병영국가적 타율과 강압을 먹고 자랐던 우리 안의 냉전의식과 문화도 사라질 터다.
변화는 그러나 불안과 고통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역시 한·미동맹이 문제다. 북·미가 종전선언을 하고 평화협정까지 맺게 된다면 동맹의 명분도 약화된다. 한국이 한 세대 만에 근대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해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성취를 이룬 데에는 한·미동맹의 뒷받침이 컸다. 안보를 의지했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공유했기에 가능했다. 그런 동맹에 변화가 온다면 이보다 더 큰 도전은 없다.
트럼프는 북·미 정상회담이 앞으로 두 번, 세 번 열릴 수 있다고 했다. 그때마다 한·미동맹은 이슬비에 옷 젖듯 조금씩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에 대한 우려도 그렇게 커질 것이다. 당장 이번 회담에서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
11월 중간선거와 2020년 대선을 앞둔 트럼프로서는 북의 핵탄두, 특히 미 본토 공격이 가능하다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실어내는 걸 유권자들에게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퍼포먼스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실어낼 핵탄두의 개수(個數)엔 개의치 않을 수 있다. 답답한 건 우리다. 북이 보유한 것으로 추산되는 핵탄두 20∼30개를 모두 실어낸 것인지, 일부만 실어낸 것인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핵탄두 ‘반출’이 트럼프의 단호한 비핵화 의지를 보여주는 걸로 여겨져 왔지만 우리에겐 오히려 함정이 되는 꼴이다. ‘반출 쇼’만 하고 일부 핵탄두는 북측과의 모종의 거래에 따른 것이든, 실수든 남겨두게 된다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핵무기의 힘은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에서 나온다. 이쪽이 핵을 가졌는지, 안 가졌는지 알 수 없도록 모호한 상태를 유지할 때 상대방은 두렵고 불안해져서 행동을 자제하게 된다. 미국이 핵탄두를 전량 수거해 갔다고 하더라도 이를 확신할 수 없기에 우리는 여전히 북핵이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대비할 수밖에 없다. ‘대비’는 점잖은 표현이고 전전긍긍해야 한다.
이런 덫에 빠지지 않으려면 사찰밖에 없다. 북의 핵시설을 무작위로 선정해 불시에 체크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북이 쉽게 응해줄 리 없다. 19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발효에 따라 13차례나 남북 핵통제공동위원회가 열렸을 때도 사찰만큼은 양보하지 않았다. 나중엔 강제사찰을 피하려고 NPT(핵확산금지조약) 체제에서 아예 탈퇴해버렸다. 핵통제공동위는 끝내 해체됐고, 비핵화선언은 휴지가 됐다.
그때의 북측 대표가 지금의 김영철이다. 당시 그는 북한군 소장(별 1개)으로 독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우리 측 대표들을 향해 “당신들이 별은 나보다 많지만 내 별은 왕별이라 달라”라고 하면서 기고만장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런 그가 이번 회담의 실무총책으로 나섰으니 협상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사찰 대목에서 특히 그러할 것으로 보인다. 사찰만큼은 결코 양보하지 않도록 미국을 강하게 압박해야 한다. 북·미가 새로 친구가 되고 한미동맹은 흔들리는, 시쳇말로 오른 뺨, 왼 뺨 다 내주는 판에 사찰마저도 챙기지 못한다면 ‘호갱’이 따로 없다.
숨가빴던 핵 게임의 현란한 말(言)과 퍼포먼스는 잠시 잊자. 이제는 디테일에 집중할 때다. 적어도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싶을 때 볼 수는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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