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중국의 잡지 '신차이푸(新財富)'에서 발표한 500대 부자 중 1위는 마화텅이다. 그의 자산 총액은 2794억4000만 위안이다. 2위는 알리바바의 마윈, 3위는 헝다그룹의 쉬자인이었다. (한달전인 4월 통계로 451억 달러(48조2000억원)란 '포브스' 기록도 있다. 세계에서 11번째 부자로 나온다.)
마화텅이 창업한 텐센트는 아시아 최대 기업이다. 올 4월초를 기준으로 시가총액이 4950억 달러(약 592조원)다. 세계에선 5번째 기업이다. 텐센트 위에는 애플, 알파벳(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4개 기업밖에 없다. 텐센트 시총이 삼성전자를 추월한 것은 작년(2017년) 초였다. 그때 세계 10위권에 진입한 뒤, 자국 내에선 알리바바를 뛰어넘고 국제적으로는 휘청거리는 페이스북을 제치면서 여기까지 달려온 것이다.
이 기업이 어디까지 갈지,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많은 이들은, 마화텅의 승승장구와 텐센트의 비약적 발전을 웅변하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현기증' 때문에 이미 그에 대해 분석하고 논평할 '엄두'를 잃어버렸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성공에 일말의 비결이 없진 않겠지만, 그 모든 것을 미화하고 예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가 성공한 방식을 애써 마스터한다 해도 반드시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 따라준 행운들과 우연과 환경적 요소들까지 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그의 삶의 세목들이 아니라 그가 문제상황을 만났을 때 해결하는 방식과 사태를 유리하게 이끄는 방식이 아닐까 한다. 텐센트를 창업했을 때 그는 삐삐로 이메일 도착이나 게시판 상황을 알려주는 일을 시작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사업이 신통치 않았기에 외주프로젝트를 하며 회사를 꾸려갔다. 그의 사업이 신통치 않았던 까닭은, 삐삐가 한물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흐름을 읽지 못했고, 자신이 회사 설립(1997년) 전부터 쓰고 있었던 ICQ메신저에 대해 투덜거리고 있었다. 온통 영어로만 되어 있는 것도 불편했고, 메신저의 구조도 복잡해 컴퓨터를 제법 알아야만 사용할 수 있었다. 어느 날 동료에게 이런 말을 한다.
"중국어로 된 ICQ를 만들어볼까, 우리?"
그때 동료들의 반응은 비교적 시큰둥했다. "중국어로 만든다고, 메신저 전혀 안 쓰는 중국 사람들이 그걸 쓰겠냐? 그리고 돈이 엄청나게 들어갈텐데..."
그때 마화텅은 말한다.
"그러니까, 일단 개발만 해서, 돈 있는 기업에 팔면 되잖아?"
# 분한 생각에 시작한 '모방인생'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진짜 큰 IT회사에서 ICQ 중국어버전 개발 프로젝트를 내걸고 입찰을 하지 않는가. 마화텅은 하늘이 도와주는 듯한 기분으로 이에 응찰했다. 텐센트가 써냈던 입찰가는 30만 위안이었고, 입찰에서 보기좋게 탈락하고 말았다. 돈이 궁했던 때라 입찰가를 많이 쓸 수 없었던 탓이다. 몹시 분했을 것이다.
미련을 못 버리고, 그는 ICQ의 복제판을 만들어낼 결심을 한다. 그게 OICQ다. 그것이 '불법'이라는 것을 몰랐을 리는 없다. 다만 이것이 히트하지 않았다면, 문제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OICQ가 뜻밖에 중국인들의 꽌시(관계 중시)와 맞물리면서 흥행으로 내달리자, 짝퉁에 대한 소송이 들어온다. 당연히 텐센트는 패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궁여지책 끝에 브랜드를 바꿔단 QQ는 마화텅에게 일대 약진의 발판을 만들어준다.
이 과정을 들여다보면, 그에게 밀어닥친 자잘한 불운들이, 그를 새로운 방식으로 진화하게 했던 게 보인다. 부딪치면서 그는 끊임없이 더 현실에 최적화된 서비스를 만들어내게 된다. 디지털 영역에서의 급속한 기술적 환경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면서 대중 욕망의 폭발을 불러낼 수 있었던 '마화텅 방식'은, 확고한 비전이나 철학 혹은 냉철한 추진력이라기보다는, 상황에 대한 '열린 태도'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다.
# 디지털계의 흑묘백묘론
그리고 사용자의 '편의'에 답이 있다고 믿은, 고객 지향성도 음미할 만하다. QICQ에 중국사람들이 열광한 까닭은, 쉽고 단순했기 때문이다. 많은 전자기기나 디지털 서비스가 저지르기 쉬운 오류가, '다기능에 대한 집착'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마화텅의 저 생각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막 메신저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널려있던 시절에 필요한 것은, 복잡하고 다양한 기능이 아니라 그저 쉽게 쓸 수 있는 메신저라는 걸, 그 스스로의 사용자 니즈(그 또한 ICQ의 사용자였으니까)를 돌아보며 직관했던 셈이다.
알리바바의 마윈이 그를 힐난하며 "텐센트의 문제는 혁신은 없고 모조리 복제품뿐이라는 점"이라고 했을 때 그의 대답은 이랬다.
"맞다. 하지만 나에게 중요한 것은 모방의 문제가 아니라 사용자를 만족시키는 것이다. 사용자가 언제 어디서 어떤 기기로 접속하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할 수 있으면 된다. 혁신이든 모방이든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 디지털서비스의 흑묘백묘론이다.
# 경청할 만한, 마화텅 정신 3가지
마화텅은 작년 8월 웨강아오베이의 텐센트 청년캠프에서 자신의 혁신정신을 세 가지로 요약해 설명했다.
"첫째 호기심을 잃지 마십시오. '도대체 왜'라는 의문을 항상 품고 있는 게 중요합니다. 이해되지 않는 대상이 있으면, 온갖 수단을 동원해 그 맥락을 파악해야 합니다.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 것도 나중에 보면 서로 통하는 이치를 지니고 있을 때가 많다. 어떤 대상을 의식적으로 파헤쳐 보려는 태도가 너무나 중요합니다.
둘째 함께 협동해서 하십시오. 혼자서 고민하면 어려운 것들이 협업하면 해결이 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할 줄 알아야 하고, 자신도 개방적 태도를 가져야겠죠. 내가 습득한 기술이나 지식을 남이 알면 위협이 될까 두려워 숨기지 마세요. 개방적인 태도를 지닐수록 얻는 게 많습니다.
셋째, 이익을 저울질 하면서 신중하게 시작하려 하지 마십시오. 일을 하기에 앞서 이득을 따지다가 오히려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선 덤벼들어 부딪치며 배우고 그걸 주변인들과 공유하면 흡수하는 속도도 충전되는 속도도 빨라집니다. 우린 보조배터리처럼 충전을 해줘야 하는 존재입니다. 완전히 방전되지 않는다면, 자신을 아낌없이 쓰십시오."
호기심을 가져라, 협업해라, 일단 부딪쳐가며 배워라. 마화텅이 요약한 자신의 삶의 스타일이며, 성공을 향해 달려온 궤적의 핵심 정리인 것만은 분명해보인다.
# 텐센트는 꿈을 잃었는가
지난 5월 중국의 젊은 SNS '쭈이유(最右)'의 설립자 판롼이 위챗에 '텐센트는 꿈이 없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텐센트는 제품력과 혁신정신을 잃어버렸다. 투자를 통한 사업 확장에만 집중하고 있을 뿐이다. 지난 2011년 텐센트가 치후360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사업방향을 대외 투자로 돌린 결과 제품 혁신력은 쇠약해지고 검색엔진, 웨이보, 전자상거래, 쇼트클립(짧은 동영상), 클라우드 등 핵심 분야에서 줄줄이 실패를 겪었다. 예컨대 최근 빠르게 성장 중인 쇼트클립의 경우, 텐센트는 2013년 웨이스(微視)라는 어플을 내놨지만 2년 뒤 주력사업에서 제외시켰고 2017년 3월 결국 사업을 접었다. 후발주자였던 콰이서우, 더우인이 그 공백을 채워 업계를 장악했다. 텐센트는 사업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텐센트가 취하는 경주시합 전략은 진정한 전략이라고 할 수 없으며 자원만 낭비하는 일이다. 기업 내부적으로도 불협화음이 있고 파이를 키우는 대신 부서간 파이 갈라먹기에 치중하고 있다."
이 글이 중국 인터넷을 휩쓸자 이튿날 새벽 마화텅이 직접 답글을 달았다.
"비판을 들어서 참 좋습니다. 투자에 힘을 쏟는 건 텐센트의 핵심우위전략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텐센트는 메신저 플랫폼 QQ를 시작하면서 SNS의 핵심이 트래픽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트래픽을 활용할 수 있는 사업 이외에 비전문적이고 비핵심적인 분야는 과감히 손을 떼고 투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제품에 관해서는 반성하고 있습니다. 양질의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더 큰 인내심과 결단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것은 나의 초심이기도 합니다. 내 꿈은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가장 좋은 제품을 내놓는 것입니다."
# M&A 정신의 비밀
텐센트를 키운 힘을 M&A에서 찾는 사람도 많다. 마화텅의 인수합병은 특이한 점이 있다. 라이엇게임즈나 슈퍼셀(핀란드 모바일게임)을 인수한 그는 두 회사의 경영에 일절 간섭하지 않는다. 자본만 지원하고 운영은 알아서 하도록 맡긴다. 그가 이렇게 하는 까닭은, 외국기업인 두 회사가 중국 기업인 텐센트의 문화와의 차이로 자유로운 사고나 개발이 막힐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카카오의 지분 8%를 보유한 2대주주이고, 미국 SNS 스냅챗의 지분을 12% 가지고 있는 대주주이지만, 마화텅은 지분만 소유했을 뿐 경영 간섭을 해본 적이 없다.
'소유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그의 투자철학은 남아프리카의 미디어그룹 '내스퍼스'에게서 배운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내스퍼스는 놀랍게도 텐센트의 오너이다. 마화텅은 텐센트의 지분을 10% 정도만 가지고 있을 뿐이며, 내스퍼스는 33%를 가지고 있다. 내스퍼스는 한번도 텐센트 경영과 관련해 의견을 내거나 결정을 내린 경우가 없다고 한다.
이상국 아주닷컴 대표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