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독전' 이해영 감독 "덕질 부르는 영화? 캐릭터 매력 발견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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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기자
입력 2018-06-05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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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독전'의 이해영 감독[사진=NEW 제공]

한 영화를 두고 반응이 갈린다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작품의 호오(好惡)가 아닌 감독의 ‘결’에 관해 반응이 갈린다는 건 신기한 일이다. 누군가는 영화 ‘독전’을 두고 이해영 감독의 전작과 결이 다르다며 “파격적”이라 말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작품 곳곳에 이해영 감독의 흔적이 그득하다”고 했다. 영화 ‘독전’ 아니 이해영(44) 감독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영화 ‘독전’은 아시아를 지배하는 유령 마약 조직의 실체를 두고 펼쳐지는 독한 자들의 전쟁을 그린 범죄극이다. ‘천하장사 마돈나’로 장편 데뷔, ‘페스티벌’,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등을 연출한 이해영 감독의 신작으로 두기봉 감독의 홍콩영화 ‘마약전쟁’을 원작으로 한다.

지난 22일 개봉한 영화 ‘독전’은 탄탄한 구조와 스타일리시한 영상미, 독보적 캐릭터 등이 돋보이는 작품. 이해영 감독이 내놓은 아름답고 잔혹한 ‘빨간 맛’에 매혹된 관객들은 점점 늘어나는 중이다.

다음은 아주경제와 만나 인터뷰를 가진 이해영 감독의 일문일답이다

영화 '독전'의 이해영 감독[사진=NEW 제공]


‘독전’을 두고 이해영 감독의 파격변신이다, 아니다 이해영 감독 스타일이다로 나뉘더라
- 그런 반응을 보는 게 재밌다. 관객들이 ‘이해영이 완전 달라졌어’, ‘여전히 어딘가에 있어’라고 하는데 딱 그 정도 반응이 좋다. ‘독전’은 ‘독전’으로 있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에 이해영 감독만의 인장이 있다면?
- 인장을 생각하며 작품을 만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독전’ 감독이 변신을 하려고 만들었다는 식으로도 보이지 않길 바란다. 앞서 말했듯 ‘독전’은 감독이 안 보이고 그 자체로 받아들여 졌으면 한다. 만약 제 작품 안에 인장이 녹아있다면 배우들과 함께 만들어간 것들 아닐까? 제가 배우와 소통하는 방식이 있고 그렇게 해서 연기자들이 표현하는 것이 있을 테니까.

관객 평들도 재밌었지만, 감독님 주변 평들이 궁금하다
- 주변 사람들이 개봉하고 예의상 (영화를) 보지 않나. 예전에는 ‘수고했다’, ‘고생 많았다’는 반응이었는데 이번에는 ‘재밌다’는 반응이 오더라. 생각해보니 이 사람들이 그동안 ‘재밌다’고 안 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하하. ‘독전’은 진심으로 재밌어하는 게 느껴져서 기분이 좋다.

영화 ‘박쥐’, ‘아가씨’의 정서경 작가가 ‘독전’의 시나리오를 맡았다. ‘독전’의 어디에 매료되었나?
- 정서경 작가의 시나리오가 이미 장르적으로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극의 정서, 감정 등에 매혹되었지. 장르 영화지만 ‘내가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작인 ‘마약전쟁’에서 차용한 것은 무엇인가?
- 원작과 ‘독전’은 차이가 크다. 원작에서 차용한 건 호텔 시퀀스인데 원호가 진하림과 박선창을 미러링하는 것이다. 또 약을 만드는 기술자들이 농인이라는 설정 정도가 비슷하다. 그 외 캐릭터들은 꽤나 다르다. 개인적으로 두기봉 감독님의 팬인데 작업하면서는 원작을 의식하거나 다르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은 없었다. 물론 계승해야 한다는 생각은 더더욱. 정서경 작가의 초고를 가지고 ‘독전’에 충실하게 이야기 안에서 만들어가는 게 더 중요했다. 제게 원작은 시나리오 쓰다가 가끔 쉴 때 한 번씩 보는 정도다. 참고용이 아닌 기분전환용이다.

영화 '독전'의 이해영 감독[사진=NEW 제공]


극 중 캐릭터들이 굉장히 강렬하다. 미국 만화를 연상케 만드는 요소들이 있었다. 캐릭터를 배우들에게 소개하고 인지하게 하는 과정이 궁금하다
- 소재 자체가 영화적이라서 현실적이지는 않다. 영화적 설정을 버텨낼 수 있을 만큼의 캐릭터가 필요했다. 설정들이 제각각 적잖이 강하니 밸런스가 중요했다. 인물들이 현장에서 놀 듯 연기할 수 있게 하면서 질서를 잡는 게 제 역할이다.

배우들이 워낙 베테랑이니 그런 부분에서는 의지가 되었을 것 같다
- 그렇다. 배우들이 자기만 돋보이려고 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김주혁 선배님 같은 경우도 하림은 센 역할이지만 보령(진서연 분)을 위해 여지를 남겨두고 열어두곤 했다. 조진웅 선배님도 뜨거운 역할이지만 차가운 락(류준열 분)을 위해 배려하는 부분이 있었다. 배우들의 배려가 질서를 잡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

캐릭터들의 등장 순서도 중요했겠다. 갈수록 힘이 빠진다는 느낌을 주면 안 되니까
- 김성령 선배님이 뾰족한 송곳으로 콱 찍어 (사건을) 촉발하고, 김주혁 선배님이 불을 지른다. 거기다 막판에는 차승원 선배님이 등장, 차가운 것도 아니고 뜨거운 것도 아닌 기묘한 미끄덩거리는 느낌을 표현해주셨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김주혁 선배님은 (영화의) 격을 높여줬고, 차승원 선배님은 폭을 넓혀주셨다고.

영화가 벌써 N차 관람 열풍이더라. ‘덕질’을 부르는 영화인 것 같다.
- 그랬으면 좋겠다. 우리 영화가 장르영화긴 한데 캐릭터 무비로 불리길 바란다. 캐릭터의 매력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캐릭터 중 솔로 무비를 만든다면 누굴 뽑고 싶나
- 모두 아쉬운데. 개인적인 ‘취향 저격’은 하림과 보령 커플이다. 만들면서 가장 신났었다. 온도가 뜨거운 사람들이기도 하고 광기 지수도 높은 사람들이니까. 저는 왜 이렇게 보령이 짠한지 모르겠다. 그에 대한 연민과 짠함을 가지고 있다.

영화 '독전'의 보령(진서연 분), 진하림(김주혁 분)[사진=NEW 제공]


영화에는 쉼표가 없다. 무작정 내달리는데 이에 대해 호오가 갈리는 것 같다
- 쉼표가 없다고 많이들 얘기한다. 하지만 쉼표를 넣으면 다들 또 ‘쉼표를 넣었다’고 얘기할 거다. 짧은 시간 동안 속도감 있게 달려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몰아쳤다. 한 호흡으로 가자는 건 시나리오 때부터 목표였다.

그런데도 관객들이 쉴 만한, 정 붙일 만한 장면이 있다면?
- 염전 제사 신이다. 갑옷을 입고 있던 락이 유사가족인 농아 남매를 만나 풀어지는 느낌이 든다. 그 장면은 락이 인간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하고 원호가 락을 사람으로서 바라보게 만드는 계기기도 하다. 그 신을 ‘쉼표’라고 부르는 건 관객들이 이완된 상태에서 캐릭터를 가깝게 느끼길 바라서 그런 거다.

락과 농아 남매의 관계성이 흥미로웠다
- 락에게 농아 남매는 유사 가족 같은 느낌이고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랐을 거로 생각했다. 가족이 없는 사람들이 가족을 대신하는 것들을 대하는 태도, 삶의 방식을 담았다. 사회적 약자를 그리는 저의 시선이기도 하다. 제가 느끼는 따듯함을 관객들도 느꼈으면 좋겠다.

영화의 반전에 대해서도 설왕설래(說往說來)가 이어지고 있다
- 반전을 모르고 보셔야 재밌지만 저는 중요한 건 여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엔딩의 실체를 만나기 전까지 끊임없이 벌어지는 사건과 과정이 중요한 거다. 스포일러가 없어야지만 어떤 캐릭터가 매혹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영화의 비밀이 밝혀진 뒤 복기할 때 ‘아, 이거 페이크(Fake)였네’라는 혐의는 남기지 않도록. 인물이 매 순간 진실하길 바랐다.

자극적이고 강한 소재 및 설정에 반해 15세이상관람가를 받게 됐다
- 만들 때 청소년관람 불가를 염두하고나 반대로 15세이상관람가를 노리지 않았다. 이런 장르 영화에서 요구되는 센 설정들을 피할 생각이 없었지만, 또 불편할 만큼 세게 할 필요도 없었다.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선에서 감독으로서 표현하고 싶은 걸 최대한 밸런스를 지키며 만들고자 했다. 저의 노력을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좋게 봐준 거 같다. 하하하.

영화를 관객에게 10분만 보여준다면?
- 캐릭터 무비니까 각 캐릭터를 1분씩 나눠서 보여주고 싶다. 하하하. 농아 남매와 진돗개까지 출연하면 한 9분 정도 될 거 같은데? 그럼 남은 1분은 주혁 선배님의 분량을 더 길게 해서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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