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연설에서 10년 동안 2500만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기적’이라는 비웃음을 샀던 이 약속이 현실이 될지도 모르겠다.
지난 1일(이하 현지시간) 발표된 5월 고용지표에서 신규 고용은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으면서 역사상 최장 기간 일자리 증가세를 이어갔다. 실업률 역시 18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지면서 사실상 완전고용에 이르렀다.
하루 전 고용지표 브리핑을 받고 한껏 고무된 트럼프 대통령은 5월 비농업부문 고용지표가 공식 발표되기도 전에 “아침 8시 30분에 발표되는 고용지표를 기대하고 있다”는 트윗으로 연방규정 위반 논란을 빚기도 했다.
◆ 기업들, 직원 구하느라 진땀
미국 노동부가 1일 공식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5월 미국에서 비농업부문의 고용은 22만3000건(계절조정치) 증가했다. WSJ의 사전 전망치인 19만건을 훌쩍 웃돌았다. 일자리 창출 흐름은 무려 92개월째 이어졌다.
실업률은 3.8%까지 떨어졌다. 닷컴 버블이 절정에 이르던 2000년대 초 이후 최저치다. 이보다 낮았던 때는 베트남전에 참전하느라 젊은이들이 빠져나간 1969년이 마지막이라고 WSJ는 전했다.
일자리 공고가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보다 더 많아지는 역전현상도 나타났다. WSJ의 5일 보도에 따르면 올해 4월말 기준으로 미국의 채용공고는 약 670만건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미국 실업자수인 630만명을 뛰어넘는 수치다.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애덤 캐민스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무척 타이트한 고용시장”이라면서 “일을 하겠다고 마음만 먹는다면 대부분 일자리를 얻는다”고 말했다. 사실상 '완전고용'이다.
구직자에겐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이 없다. WSJ는 수년 동안 비정규직을 전전하던 제러미 민시(26)의 사례를 소개했다. 대학교를 중퇴한 그는 몇 년 동안 공장, 식당, 상점 등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했다. 일자리를 옮기는 데에도 몇 달씩 걸리곤 했다. 그러다 올해 초 앨라배마 주 버밍험에 위치한 철강회사 윌리엄스메탈앤웰딩알로이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했다. 최근에는 회사에서 정규직 제안을 받았다. 그는 “이제야 비정규직의 고리에서 빠져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노동자 우위의 시장이 열리면서 기업들의 인재 유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채용 문턱을 낮추거나 일부는 파격적 혜택을 제공하기도 한다.
일리노이 주에 위치한 채용 중개업체인 EEP의 테리 그리노 사장은 “실업률이 이만큼 낮을 때에는 기업들이 이미 직장을 가진 사람들을 두고 경쟁하는 셈"이라면서 “구인을 문의하는 기업에 학력이나 범죄경력 등의 기준에 대해 현실적으로 생각하라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특히 건설, 에너지, 운송, 병원 등의 업종에서는 인재 찾기가 더 어려운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 최대 철도회사인 유니언퍼시픽은 기계나 전기 기술자와 같은 고숙련 노동자뿐 아니라 이제는 비숙련 노동자를 찾는 데에도 애를 먹고 있다.
아이오와 주의 카운슬 블러프즈의 경우 실업률이 3%보다 낮다보니 유니언퍼시픽을 포함한 이곳의 기업들은 직원을 구하는 게 하늘의 별따기다. 최근 유니언퍼시픽은 별다른 기술이나 교육이 필요하지 않은 고졸 승무원 채용에 2만 달러(약 2100만원)에 달하는 취업 인센티브까지 제공하기로 했다. 또한 고등학교 재학생을 대상으로 직업 교육을 제공하는 등 미리부터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랜스 프리츠 유니언퍼시픽 CEO는 NYT에 “일부 지역에서는 실업률이 1.5% 정도다. 고등학교 재학생이라도 미리 접촉하고 직무를 익히게 해야 졸업 후 곧장 데리고 올 수 있다”고 말했다.
레스토랑 체인인 샐러드웍스(Saladworks)는 직원을 구하기 위해 임금을 약 5% 높였다. 타투와 피어싱을 금지하던 엄격한 기준도 낮추었고 청바지나 반다나 착용도 허용했다. 스케줄 조정도 유연성을 높였다. 패트릭 슈그류 CEO는 WSJ에 “금요일 프롬파티 약속이 있는 직원을 위해 스케줄을 조정해줘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는 그만둘 것이다. 월요일에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연준 6월 금리인상 확실시
일손이 부족한 기업들은 직원 채용을 위해 높은 임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 경우 기업의 인건비가 높아져 마진이 줄어들 수 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기업들은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을 올리고, 결국 인플레 상승으로 이어진다.
강한 고용지표는 미국의 성장률을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매크로이코노믹 어드바이저스는 미국 성장률이 올해 1분기 2.2%에서 2분기에는 4.1%까지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연방준비제도(Fed)는 이 같은 현상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구인난과 인플레 상승은 경기가 과열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연준은 앞서 예고한 것보다 금리를 빠르게 올려야 할 수도 있다. 올해 연준은 기준금리를 세 차례 인상할 것으로 전망한다.
시장은 이달 12~13일로 예정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연준이 올해 들어 두 번째로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연준은 지난 3월에 기준금리를 0.25%p 올린 1.50~1.75%로 제시했다.
일각에서는 연준이 올해 네 차례 이상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다만 많은 전문가들은 연준이 '점진적'인 금리인상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바클레이즈의 마이클 가펜 이코노미스트는 5월 고용지표를 두고 "예상을 뛰어넘는 강력한 고용지표였지만 연준의 금리인상 속도가 느리다고 판단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또한 최근 고조되고 있는 글로벌 무역전쟁이 미국 성장률과 고용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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