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기업을 설립해 두 분야의 거대한 산업을 일으키고 한 나라의 명운을 바꾼 남자.
지난 5일 영원한 은퇴를 선언한 장중머우(張忠謀·모리스 창) 대만 TSMC 회장(86)의 삶은 아마 이렇게 묘사할 수 있을 듯 싶다.
세계 최대의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인 TSMC의 지난해 매출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35조원과 13조4000억원이다. TSMC는 대만 국내총생산(GDP)의 7%를 책임지고 있다.
TSMC의 등장과 함께 대만은 정보기술(IT) 산업 강국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장 회장은 반도체의 설계와 생산을 분리할 수 있다는 구상에 따라 TSMC를 설립해 파운드리 분야를 개척했다. 생산을 전담하는 업체가 생기자 애플과 퀄컴 등 반도체 설계 역량을 갖춘 기업들이 활로를 찾을 수 있었다.
셰익스피어를 사랑하던 한 문학청년이 우연한 계기로 반도체 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뒤 63년 동안 이뤄낸 성과다.
◆작가 지망생이 반도체 업계 기린아로
1931년 중국 저장성 닝보에서 태어난 장 회장은 중일전쟁과 국공내전이 잇따라 발발한 탓에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중국 내 6개 도시를 전전하며 학교를 9차례나 옮겼다.
기약 없는 피란 생활에 지친 그의 가족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고, 장 회장은 1949년 하버드대에 입학했다.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심취해 작가를 꿈꾸던 장 회장은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현실적 이유 때문에 매사추세츠 공대(MIT)에 다시 입학해 기계공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에는 포드자동차 입사시험에 합격했지만 더 높은 급여를 약속한 실바니아 일렉트로룩스를 선택했다. 실바니아 일렉트로룩스는 단순한 전력공급장치를 만들던 업체였다.
장 회장은 "포드에 가고 싶었지만 임금 조건이 맞지 않았다"며 "인생의 전환점은 이렇듯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것 같다"고 술회했다.
3년 뒤 미국 반도체 전문기업인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로 이직한 그는 성공 가도를 달린다. 1972년 반도체 부문 부사장에 올랐고, 숙적 IBM을 2위로 밀어낸 공고를 인정받아 1978년에는 그룹 전체 부사장에 앉았다. 당시 글로벌 기업에서 근무하던 중국인 중 최고위직이었다.
◆대만 경제을 일으켜 세우다
1983년부터 모토로라의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 부문 사장으로 재직하던 그는 1985년 대만 정부의 요청으로 대만공업기술연구원 원장에 취임한다.
고도 성장을 거듭하다 1979년 터진 2차 오일쇼크로 경제 위기를 맞은 대만은 장 회장의 건의를 받아들여 IT 산업 중심의 10년 경제건설 계획을 수립한다.
장 회장은 대만 정부의 지원을 받아 1987년 반도체 위탁생산 공기업인 TSMC를 설립한 이후 31년 동안 회장으로 회사를 이끌었다. TSMC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매출 기준으로 삼성전자와 인텔을 추격하는 3위까지 도약했다.
TSMC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대만 기업들은 반도체와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애플의 아이폰을 독점 생산하는 팍스콘도 대만 기업이다.
대만 언론으로부터 '경제를 살린 구세주'로 평가받는 장 회장의 퇴장은 요란스럽지 않았다. 그는 "영예는 곧 담배 연기처럼 사라지고 박수도 언젠가는 그치게 마련"이라며 "앞으로는 독서와 습작, 마작으로 여생을 보내겠다"고 은퇴의 변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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