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世紀)의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우리들 인생에서 약속(約束)은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말이다. 약속의 사전적 의미는 상대방과 장래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정하고 함께 이행키로 다짐하는 것이다. 그 속에는 희망과 기대를 품게 하는 바람이 들어 있어 누구든 설레는 게 아닐까.
약속은 이행 여부가 핵심 이슈다. 약속이 지켜질 경우 상호간 신뢰도와 만족도가 상승하지만, 그러지 않으면 실망감과 배신감으로 충격과 혼란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12일 오전 10시(한국시간) 싱가포르 센토사섬 해변에서 열리는 북·미 정상회담도 취소와 이행을 반복하는 약속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왔다. 1953년 한반도 정전협정 이후 65년 만의 약속 담판이어서 힘겨루기의 신경전은 불가피했으리라. 다행스레 평화의 임무(Mission of Peace)가 완성된다고 하니 세기사(世紀史)적 약속의 축제가 되길 기대해 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정상회담도 핵심은 약속 이행이다. 미국의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안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와 북한의 CVI+G(Guarantee, 완전한 체제보장) 간의 빅딜이다. 빅딜은 막판까지 밀고 당기는 ‘밀당게임’을 수반한다.
미국은 대북제재 해제와 한국·일본·중국의 경제지원 그리고 민간투자 유도를 통해 북한의 경제발전을 확약하는 '경제적 CVIG'에 주력하는 입장이다. 북한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나아가 북·미수교와 김정은 체제 보장의 '안보적 CVIG‘에 방점을 찍고 있다. 양국은 간극의 해법으로 완전한 관계정상화(CVI+Normalization)를 약속 협상의 테이블에 올렸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인 셀리그 헤리슨(1927~2016)은 1993년 1차 북핵위기 당시 김일성 북한 주석에게도 CVIN을 제안한 바 있다. 핵문제 해결을 통해 정상국가로 환골탈태하라는 것이다.
지난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의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홀연히 찾아든 동북아 평화협상은 싱가포르에서 세기의 대담판으로 이어졌다. 싱가포르는 지정학적 측면은 물론 역사상 미국과 북한 간 약속 이행장소로도 절묘하다.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을 개혁·개방으로 이끈 역사적 경험도 보유 중이다.
싱가포르는 덩샤오핑(鄧小平) 중국지도자가 계획한 광둥성 선전(深圳)의 멘토이자, 상전벽해의 도시 상하이의 스승 격이다. 1904년생인 덩샤오핑은 19살 아래 리콴유 싱가포르 국부(國父)를 1978년 11월 싱가포르에서 처음 만났다. 그리곤 1992년 남순강화(南巡講話) 당시 “싱가포르를 배우자. 우리는 더 잘할 수 있다”라고 했다. 광둥성에서 이주해온 객가(客家) 후배, 리콴유의 충고를 14년간 신주단지 모시듯 가슴속에 품고 있다가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기실 김정은 위원장의 할아버지인 김일성 국가주석(1912~1994)도 덩샤오핑은 물론 리콴유와도 교감을 유지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의 고모부 장성택이 2002년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서울과 상하이 다음으로 방문했던 곳이 싱가포르다. 싱가포르는 21세기형 일당 독재국가이기도 하다. ‘독특한 전제국가’로서 1인당 국민소득 5만 달러를 넘어선 경제강국이라는 포인트는 김 위원장의 ‘원산 경제특구 구상’에도 영감을 주리라.
싱가포르는 일종의 리씨 왕국과도 같다. 김씨 왕조의 일가가 북한을 통치해온 것처럼 ‘지도자 유전자론’을 주창해온 리콴유의 장남 리셴룽이 3대 총리다. 국영투자기관 테마섹(Temasek)의 최고경영자(CEO)도 리 총리의 부인인 호칭 여사다. 김정은 위원장으로선 벤치마킹해야 하는 정치체제의 포지셔닝이다.
싱가포르는 김 위원장에게는 낯설지만 북한과는 오랜 수교국가다. 과거 미국과 대립하던 중에도 비밀대화를 여기서 이어왔다. 2000년 첫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박지원 당시 문화부장관이 북측 특사를 비밀리에 만난 곳도 여기다.
트럼프 대통령이 센토사섬을 약속 장소로 낙점한 것은 정치적 중립성과 안전성은 물론 나름의 지정학적 심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에 맞서 미국이 펼치는 동아시아 패권전략의 핵심축이 ‘대만-남중국해-싱가포르 라인’이라는 것 또한 기묘하다.
싱가포르는 중국의 반대와 견제에도 미국은 물론 대만과도 군사교류를 지속한다. 오늘도 미국의 연안초계함과 해상초계기가 센토사섬 인근에 주둔 중이다. 참으로 기기묘묘한 약속협상의 선택지다.
1993년 1차 북핵위기 이후 25년 만에 신묘한 타이밍과 장소에서 비핵화의 해법을 모색하는 북·미 정상회담. 1917년 제정 러시아의 붕괴로 탄생한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국가, 소련의 마르크스주의를 승계해온 북한과 자유시장경제체제의 선봉장으로서 1991년 소련의 붕괴를 주도해온 미국 간의 역사적 빅딜인지라, 그 결과의 향배는 가늠키 어렵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물론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약속의 향배에 치열한 심산을 하고 있으리라.
얼핏 반도의 미래를 둘러싼 대륙세력(중국, 러시아, 북한)과 해양세력(미국, 일본, 한국) 간 두뇌게임도 어른거린다. 모쪼록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순풍을 타고 믈라카 해협의 거친 파도를 헤쳐나가는 승풍파랑(乘風破浪)의 기세로 대담판을 성공시키길 기대해본다. 지구촌 모두가 절절히 원하는 ‘약속 중의 약속’이니까.
<발행인>
우리들 인생에서 약속(約束)은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말이다. 약속의 사전적 의미는 상대방과 장래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정하고 함께 이행키로 다짐하는 것이다. 그 속에는 희망과 기대를 품게 하는 바람이 들어 있어 누구든 설레는 게 아닐까.
약속은 이행 여부가 핵심 이슈다. 약속이 지켜질 경우 상호간 신뢰도와 만족도가 상승하지만, 그러지 않으면 실망감과 배신감으로 충격과 혼란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12일 오전 10시(한국시간) 싱가포르 센토사섬 해변에서 열리는 북·미 정상회담도 취소와 이행을 반복하는 약속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왔다. 1953년 한반도 정전협정 이후 65년 만의 약속 담판이어서 힘겨루기의 신경전은 불가피했으리라. 다행스레 평화의 임무(Mission of Peace)가 완성된다고 하니 세기사(世紀史)적 약속의 축제가 되길 기대해 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정상회담도 핵심은 약속 이행이다. 미국의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안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와 북한의 CVI+G(Guarantee, 완전한 체제보장) 간의 빅딜이다. 빅딜은 막판까지 밀고 당기는 ‘밀당게임’을 수반한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인 셀리그 헤리슨(1927~2016)은 1993년 1차 북핵위기 당시 김일성 북한 주석에게도 CVIN을 제안한 바 있다. 핵문제 해결을 통해 정상국가로 환골탈태하라는 것이다.
지난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의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홀연히 찾아든 동북아 평화협상은 싱가포르에서 세기의 대담판으로 이어졌다. 싱가포르는 지정학적 측면은 물론 역사상 미국과 북한 간 약속 이행장소로도 절묘하다.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을 개혁·개방으로 이끈 역사적 경험도 보유 중이다.
싱가포르는 덩샤오핑(鄧小平) 중국지도자가 계획한 광둥성 선전(深圳)의 멘토이자, 상전벽해의 도시 상하이의 스승 격이다. 1904년생인 덩샤오핑은 19살 아래 리콴유 싱가포르 국부(國父)를 1978년 11월 싱가포르에서 처음 만났다. 그리곤 1992년 남순강화(南巡講話) 당시 “싱가포르를 배우자. 우리는 더 잘할 수 있다”라고 했다. 광둥성에서 이주해온 객가(客家) 후배, 리콴유의 충고를 14년간 신주단지 모시듯 가슴속에 품고 있다가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기실 김정은 위원장의 할아버지인 김일성 국가주석(1912~1994)도 덩샤오핑은 물론 리콴유와도 교감을 유지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의 고모부 장성택이 2002년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서울과 상하이 다음으로 방문했던 곳이 싱가포르다. 싱가포르는 21세기형 일당 독재국가이기도 하다. ‘독특한 전제국가’로서 1인당 국민소득 5만 달러를 넘어선 경제강국이라는 포인트는 김 위원장의 ‘원산 경제특구 구상’에도 영감을 주리라.
싱가포르는 일종의 리씨 왕국과도 같다. 김씨 왕조의 일가가 북한을 통치해온 것처럼 ‘지도자 유전자론’을 주창해온 리콴유의 장남 리셴룽이 3대 총리다. 국영투자기관 테마섹(Temasek)의 최고경영자(CEO)도 리 총리의 부인인 호칭 여사다. 김정은 위원장으로선 벤치마킹해야 하는 정치체제의 포지셔닝이다.
싱가포르는 김 위원장에게는 낯설지만 북한과는 오랜 수교국가다. 과거 미국과 대립하던 중에도 비밀대화를 여기서 이어왔다. 2000년 첫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박지원 당시 문화부장관이 북측 특사를 비밀리에 만난 곳도 여기다.
트럼프 대통령이 센토사섬을 약속 장소로 낙점한 것은 정치적 중립성과 안전성은 물론 나름의 지정학적 심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에 맞서 미국이 펼치는 동아시아 패권전략의 핵심축이 ‘대만-남중국해-싱가포르 라인’이라는 것 또한 기묘하다.
싱가포르는 중국의 반대와 견제에도 미국은 물론 대만과도 군사교류를 지속한다. 오늘도 미국의 연안초계함과 해상초계기가 센토사섬 인근에 주둔 중이다. 참으로 기기묘묘한 약속협상의 선택지다.
1993년 1차 북핵위기 이후 25년 만에 신묘한 타이밍과 장소에서 비핵화의 해법을 모색하는 북·미 정상회담. 1917년 제정 러시아의 붕괴로 탄생한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국가, 소련의 마르크스주의를 승계해온 북한과 자유시장경제체제의 선봉장으로서 1991년 소련의 붕괴를 주도해온 미국 간의 역사적 빅딜인지라, 그 결과의 향배는 가늠키 어렵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물론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약속의 향배에 치열한 심산을 하고 있으리라.
얼핏 반도의 미래를 둘러싼 대륙세력(중국, 러시아, 북한)과 해양세력(미국, 일본, 한국) 간 두뇌게임도 어른거린다. 모쪼록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순풍을 타고 믈라카 해협의 거친 파도를 헤쳐나가는 승풍파랑(乘風破浪)의 기세로 대담판을 성공시키길 기대해본다. 지구촌 모두가 절절히 원하는 ‘약속 중의 약속’이니까.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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