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전쟁을 피하기 위해 막판까지 협상 의지를 피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고위급 인사가 직접 워싱턴으로 건너가 물밑 교섭을 벌였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끝내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를 강행했다.
중국은 즉각 보복관세 조치를 취하며 마지막 성의가 무시당한 데 따른 불쾌감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美 마지막 설득 시도한 習 측근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왕천(王晨)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13~16일 전인대 대표단을 이끌고 미국을 방문했다고 18일 보도했다.
왕 부위원장은 공화당 소속의 폴 라이언 하원의장과 오린 해치 상원의장 대행,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와 존 라슨 하원의원 등을 만났다. 존 설리번 미국 국무부 부장관과도 회담을 가졌다.
미·중 무역 갈등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미국 정부와 의회의 주요 인사들과 두루 접촉한 것이다.
신화통신은 "왕 부위원장은 회담 중 경제·무역 분야와 지식재산권 관련 입법 등에 대한 중국 측 입장을 천명했다"며 "중·미 간의 민감한 문제와 갈등이 잘 처리됐으면 좋겠다는 뜻도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어 "왕 부위원장은 양국이 상호 존중과 협력 공영의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며 "양국 입법기관 간의 소통과 신뢰 강화 의지도 내비쳤다"고 덧붙였다.
중국이 관영 매체를 통해 왕 부위원장의 방미 소식을 뒤늦게 전한 것은 양국의 무역전쟁을 막으려 끝까지 노력했다는 점을 드러내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은 권력 서열 25위 이내인 당 중앙정치국원이자 시 주석의 측근인 왕 부위원장을 파견해 물밑 조율을 벌였지만 미국은 지난 15일 관세 부과를 강행했다. 공교롭게도 시 주석의 생일날이었다.
중국도 미국 측 발표가 나온 지 6시간 만에 500억 달러의 미국산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하며 반격에 나섰다.
◆習 칭화대 입학 도운 지기(知己)
미국과의 마지막 담판에 투입된 왕 부위원장은 대표적인 시자쥔(習家軍·시진핑 친위 세력)으로 분류된다.
두 사람은 문화대혁명 시기인 1970년대 초부터 친분을 쌓아 온 지기(知己)다.
시 주석이 산시성 옌안의 량자허촌에서 하방(下放·지식인을 노동 현장으로 보내는 조치) 생활을 하던 때 왕 부위원장은 옆 마을인 이쥔현으로 하방됐다가 현지 당 간부로 발탁된다.
나이는 왕 부위원장이 세 살 위였지만 둘은 다양한 주제의 대화를 나누며 형제처럼 지낸 것으로 전해진다.
1975년 하방을 마친 시 주석은 당 간부였던 왕 부위원장의 추천으로 칭화대 화공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시 주석이 왕 부위원장을 은인으로 여길 만한 대목이다.
왕 부위원장은 1974년 관영 광명일보에 기자로 입사하며 언론계에 투신한 뒤 1995년 광명일보 총편집, 2000년 중앙선전부 부부장(차관), 2001년 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총편집 등을 맡으며 승승장구했다.
이듬해인 2002년에는 장관급인 인민일보 사장으로 승진했으며, 시 주석 집권 전까지 중앙선전부 부부장, 국무원 신문판공실 주임,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 주임 등을 역임했다.
2013년 시진핑 체제 1기가 시작되자 최고 입법기구인 전인대 부위원장으로 발탁돼 시 주석의 개혁 입법을 지원해 왔다.
왕 부위원장은 지난해 제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 때 정치국원으로 발탁됐다. 당시 왕 부위원장의 나이는 67세로 '7상8하(67세 선임·68세 퇴임)' 기준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했다. 시 주석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게 중론이다.
지난 3월 11일 오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인대 3차 전체회의.
왕 부위원장은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수정안 초안 투표 결과 개헌안이 통과됐음을 선언한다"고 외쳤다.
'시진핑 사상'을 헌법에 삽입하고 중국 국가주석의 연임 제한을 철폐하는 내용의 개헌안으로, 시 주석이 장기 집권의 길로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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