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속 이야기] "궁궐에 기린이 살았다고?" 창경원 기린의 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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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준무 기자
입력 2018-06-2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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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일은 멸종 위기 알리는 '세계 기린의 날'…국내 첫 도입은 1971년 창경궁

[사진=아이클릭아트]


2014년 6월 21일. 국제기린보호협회(GCF)는 이날을 '세계 기린의 날'로 지정했다. 1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긴 하지(夏至)에 지구에서 가장 목이 긴 동물의 멸종 위기를 알리기 위해서다. 지난 30년 동안 아프리카 대륙의 야생 기린 개체수는 40% 가까이 감소했다. 무분별한 밀렵과 서식지 파괴가 원인이다. 북부기린의 경우 현재 약 5000마리에 불과하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이 '6월의 동물'로 그물무늬기린을 선정한 것 또한 마찬가지 이유다. 서울동물원은 전신인 창경원 시절 국내 최초로 기린을 선보인 곳이다. 1970년대 이전만 해도 한국에서는 기린을 실제로 볼 수가 없었다.

기린이 한국에 첫 발을 내디딘 때는 1971년 9월 무렵이다. 박흥식 화신산업 사장이 1만 달러를 쾌척해, 창경원이 일본에서 암수 한쌍을 들여오기로 한 것이다. 요코하마항을 출발한 기린 부부는 불행히도 사별한다. 태풍을 맞닥뜨린 배가 흔들리는 와중에 암컷 기린이 벽에 머리를 부딪혀 숨을 거뒀다.

홀로 남은 수컷 기린은 우여곡절 끝에 인천항에 내렸다. 5t 화물트럭으로 창경원까지 나르는 데만 2시간이 걸렸다. 트럭이 지나가는 곳마다 난생 처음 기린을 보는 인파가 몰리면서 곳곳에서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창경원은 이 귀한 손님을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짜장면 한 그릇이 100원이었던 시절 1500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난방 장치가 완비된 92평 규모의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한편, 동물원 내 모든 수의사를 붙여 세심한 관리에 나섰다.

1년 뒤에는 일본에서 암컷 한 마리를 더 데려왔다. 무리한 합사 때문일까. 중매는 비극으로 끝나고 만다. 암컷 기린은 20일만에 목이 부러져 죽은 채로 발견됐다. 성질이 예민했던 이 수컷 기린 역시 한국에 들어온 지 2년6개월째인 1974년 3월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창경원은 1983년 문을 닫는다. 창경원에 있던 동물들은 경기 과천시에 위치한 지금의 서울동물원으로 보금자리를 옮긴다. 창경원이 창경궁이란 이름을 되찾은 1986년, 서울동물원의 기린들은 비로소 2세를 출산했다. '국내산' 기린의 족보가 시작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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