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자동차가 없던 시절에 경부고속도로를 깔아야 하는 느낌이었다.”
류제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전파정책국장은 20일 아주경제와 만나 지난 18일 마무리한 5세대(5G) 이동통신용 주파수 경매를 준비하는 과정에 관해 이 같은 소회를 밝혔다. 류 국장은 지난해 10월 전파정책국장직을 맡아 약 8개월간 5G 주파수 할당을 위한 실무를 진두지휘했다.
우리나라의 이번 5G 주파수 할당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다. 영국이 지난 4월 3.4㎓ 대역의 150㎒ 폭을 할당했지만, 3.5㎓ 대역과 밀리미터파인 28㎓ 대역을 동시에 공급한 나라는 한국이 최초다. 할당 주파수 폭만 2680㎒로, 영국의 할당량보다 18배가량 많다.
과거의 주파수 경매 사례를 그대로 적용할 수도 없었다. 4G까지는 휴대폰 통신용도로 사용됐지만 초고속‧초저지연‧초연결 특성을 가진 5G는 자율주행차와 스마트공장, 원격의료 등 산업 전반으로 적용 분야가 확대된다. 데이터 트래픽의 폭증과 이를 감당할 주파수 폭을 가늠하는 것이 최대 난제였다.
자율주행차 한 대가 하루에 유발하는 데이터 트래픽은 4TB로 추정된다. 스마트폰 데이터를 많이 쓰는 헤비유저의 일평균 데이터 사용량이 1GB라는 점을 감안하면, 자율주행차 한 대의 데이터 트래픽은 스마트폰 헤비유저 3000명이 사용하는 양과 맞먹는다. 향후 자율주행차가 대중화돼 수천만 대가 도로를 달리면 감당해야 할 데이터 트래픽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난다.
류 국장은 “2~4G 이동통신은 410㎒ 폭을 사용해왔는데, 5G는 2700㎒ 폭을 할당했다. 4차선 도로에서 갑자기 27차선 도로가 필요해진 상황”이라며 “5G는 4G와 비교해 선형적으로 대입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특히 대역폭 당 가치, 대역폭과 트래픽의 상관관계 등이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는 지난해 말부터 학계와 연구계 등의 전문가로 주파수정책자문위원회(이하 자문위)를 구성, 매월 모여 조찬에 오찬까지 함께하며 5~6시간씩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했다. 지난 세 차례 주파수 경매에서 형식적으로 자문위를 운영했던 것과 비교하면 불확실성 해소를 위한 과기정통부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한국이 발 빠르게 5G 주파수를 할당한다는 소식에 경매 준비 상황과 노하우, 국내 통신업계 반응 등을 듣기 위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의 전파정책그룹 의장단이 과기정통부를 찾기도 했다. EC 전파정책그룹은 EU 회원국의 전파국장들이 참여하고 있다.
류 국장은 “미국과 중국을 필두로 주요 국가들이 5G를 조기 상용화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유럽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류 국장은 이번 5G 주파수 경매에서 3사가 모두 만족할 만한 성적표를 받았다고 평가했다. SK텔레콤은 3.5㎓ 대역에서 원하는 주파수량과 위치를 가져갔고, KT는 위치에 대한 선호 없이 SK텔레콤과 동일한 주파수량을 가져갔다. LG유플러스 또한 타사 대비 3.5㎓ 대역에서 20㎒ 폭을 덜 가져가는 대신 원하는 위치를 얻었다.
경매 단계별 라운드 수와 최종 낙찰가 등은 과기정통부가 예상한 시나리오 내에서 결정됐다. 할당 대상 주파수량이 많기도 했고, 과기정통부가 3.5㎓ 대역에서 한 사업자가 가져갈 수 있는 양을 100㎒ 폭으로 제한하면서 과열 경쟁은 없을 것으로 전망됐다.
류 국장은 “과거 주파수 경매에서는 3사가 상대방의 할당 비용을 증가시키는 전략을 구사했다. 그러나 이번 경매는 상대방의 비용만 늘릴 수 없는 방식이어서 라운드를 지속하지 않는 게 합리적”이라며 “경매가 치열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다보니 최저경쟁가격을 결정하는 데 매우 고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경매에 대해 타 국가보다 자율주행차나 스마트시티, 스마트공장,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등 다양한 산업을 이상적인 조건에서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류 국장은 “5G의 경제적 기회, 기술적 가능성을 미리 살펴보고 미래 기술의 선도자가 될 기회를 마련했다”며 “국가의 미래가 달린 첫 출발을 무난히 마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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