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자 마지막 대권 완주는 1987년 13대 대선이었다. 5군 신군부 등장으로 정치적 영어의 몸이 됐던 '박정희 후계자' 김 전 총리는 1987년 신민주공화당을 창당, 13대 대선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는 13대 대선에서 4위에 그쳤지만 이듬해 총선에서 충청권을 기반으로 35개 의석을 확보하며 건재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 2인자' 수식어를 단 그의 입지는 거세게 불어오는 민주화의 바람 앞에서 여지없이 흔들렸다.
1997년 대권 도전을 선언하며 재기를 노렸으나 대선 막바지 그의 선택은 또다시 2인자였다.
여야 정권교체라는 명분을 내세워 당시 김대중 후보의 손을 들어주면서 'DJP 연합'을 성사시키며 헌정사상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뤘다.
그는 '국민의 정부 초대 국무총리'라는 공식적인 2인자 반열에 올랐으나 이후 내각제 파동 등 공조 파기로 이어졌고, 정치적 내리막길을 걸었다.
당시 민주당에서 노무현 후보와 후보경선에서 경합을 벌이다 중도하차한 뒤 자민련 총재권한대행에 취임한 이인제 의원은 김 전 총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지원했다.
2007년 17대 대선에서는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를 지원했다.
김 전 총리는 2007년 12월 검찰의 'BBK 주가조작' 사건 수사결과 발표 직후 이 후보 지지 의사를 천명하면서 공식 지원 유세에 나섰다.
그는 당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할 유일한 대안인 이 후보를 대통령으로 모신 뒤 다시 야인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2012년 18대 대선을 앞두고선 소원했던 처조카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의 지지선언 대열에 뒤늦게 합류했다.
하지만 이후 2016년 11월 탄핵 정국에선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을 향해 "5000만 국민이 달려들어서 내려오라고 해도 거기 앉아 있을 그런 고집쟁이"라고 혹평했다.
2017년 5·9 대선에선 사실상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김 전 총리는 당시 홍 후보가 예방한 자리에서 "난 대통령 안 될 사람은 안 만난다. 관상이 좋다"며 "(홍 후보) 얼굴을 보면 티가 없는데, (대통령이) 됐으면 참 좋겠다"고 홍 후보를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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