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인문학] 남북경협과 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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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란 기자
입력 2018-06-28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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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식 신한BNPP자산운용 부사장. [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서준식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부사장

금융의 역사만큼이나 금융에 대한 비판론과 무용론의 역사도 길다. 셰익스피어의 걸작 '베니스의 상인'도 결국은 당시 팽배했던 금융의 폐해를 풍자한 것이리라. 21세기 들어서는 금융위기 이후 곳곳에서 반(反)금융 운동이 일어났다. 실물경제에서 땀 흘리며 거둔 과실의 단물을 금융사가 거두어간다는 비판이다.

금융업에 종사하는 필자의 시각에서도 금융업계가 복기하고 반성해야 할 부분이 많다. 금융위기 직전 엄청난 자금이 과열된 주식시장과 해외펀드시장으로 이동했던 경로가 금융이었다. 현재 15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대출의 길을 터준 것도 역시 금융이다. 급증한 가계대출 부담은 유효수요를 높이기 위한 현 정부의 어떤 정책도 잘 통하지 않게 하는 괴력을 발휘하며 우리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최근 한 대형 증권사의 자사주 공매도 사건은 경제에 미친 영향은 크지 않았으나 금융업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금융을 불신해서인지 정부도 금융정책에 대한 의사결정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한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1년가량 공백인 상황이다. 한국거래소 개편안은 수년째 국회에 계류돼 있다. 몇몇 금융사의 인수·합병 승인이 지연되고 있고 단기금융업 인가를 위해 대규모로 자본을 늘린 일부 대형 증권사도 승인을 못 받고 있다. 아직도 냇가를 건너지 못하고 돌다리를 두드리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꾸준한 성장을 보여준 수많은 대형 금융주의 주가가 청산가치의 60~70%대에 불과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마키아벨리.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주역이라는 것 외에도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최초의 현대식 은행을 경영했던 메디치 가문을 위해 일했거나 후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유명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자신의 재취업을 위해 메디치 가문에 헌정할 목적으로 쓰여졌다. 최초의 오페라도 메디치 가문의 어느 결혼식을 위해 탄생했다. 이처럼 금융자본은 르네상스라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에게서 받은 거액의 자금으로 콜럼버스가 처음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콜럼버스가 세계 최초의 벤처기업가였다면 이사벨라 여왕은 세계 최초의 벤처투자가였던 셈이다. 물론 당시에는 그런 대규모의 자금을 댈 수 있는 단독 투자가나 은행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대규모의 자금을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모집하기 위해 동인도회사라는 최초의 주식회사가 탄생했다. 동인도회사 주식의 유통을 위해 암스테르담에 세계에서 처음 증권거래소도 설립됐다. 이후 수많은 선박단이 대항해시대를 열었고, 역사는 본격적인 자본주의 사회로 빠르게 이동했다.

역사에서 보듯 금융은 실물경제의 발전에 엄청난 동력을 제공한다. 도로와 항만, 철도 같은 국책 사회간접자본(SOC) 사업도 이제 금융 없이는 불가능하다. 영국과 싱가포르, 홍콩, 스위스의 공통점은 금융업의 발달로 실물경제의 경쟁력에 비해 훨씬 잘 사는 부국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끔 삐걱거리긴 해도 근본적으로 금융경제는 실물경제와 함께 수레의 양바퀴임을 이해해야 한다.

남북경협도 다르지 않다. 주식시장에서 먼저 뛴 종목은 건설주와 같은 실물경제 수혜주였다. 하지만 수많은 남북 경제협력 사업에는 큰 자금이 필요하다. 성공을 위해서는 금융의 전방위적 지원이 절실할 수밖에 없다. 주식 투자자라면 아직 시세를 못 낸 금융주 투자를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금융은 엄청난 부가가치를 올릴 사업과 보다 높은 수익을 원하는 투자자 사이에서 튼튼한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 

정부와 국회가 소외돼온 금융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남북경협이라는 대어를 눈앞에 두고 정비되지 않은 금융 낚싯대를 드리우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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