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맡아온 중도 보수 성향의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82)이 내달 퇴임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신속히 후임 물색에 나선 가운데 보수 성향이 짙은 대법관이 임명될 가능성이 높아 향후 대법원의 보수 우위 구도가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CNN 등 현지 주요 매체들의 27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케네디 연방대법관은 성명을 통해 7월 31일부로 대법관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대법관은 종신직이지만 고령인 탓에 퇴임설이 꾸준히 제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케네디 대법관에 경의를 표해야 한다"면서 “앞으로 40~45년 계속할 수 있는 대법관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지 매체들은 케네디 대법관의 퇴임으로 대법원의 보수 성향이 한층 단단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논란 속에서도 반이민 행정명령 등 강경 보수 정책을 강행하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대법원의 지원사격이 필수적인 만큼 '정치적 우군'으로서 보수 성향이 확실한 인물을 지명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 현재 미국 대법원은 케네디 대법관을 포함한 보수가 5명, 진보가 4명인 이념 지형을 형성하고 있는데 앞으로 강경 보수 인사가 중도 보수 케네디 대법관을 대체할 경우 보수 우위의 구도가 한층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화당의 미치 맥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하는 대법관을 11월 중간선거 전에 신속히 인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에 의석을 빼앗길 경우 보수 성향의 대법관 인준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민주당과 진보 매체들 사이에서는 우려와 경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법원을 오른쪽으로 이동시킬 수 있게 됐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케네디 대법관이 있는 연방대법원과 트럼프가 임명한 그의 후임자가 있는 연방대법원은 하늘과 땅 차이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지명으로 1988년부터 연방대법원에 몸담은 케네디 대법관은 기본적으로는 보수 성향을 보였으나 진보-보수 가치관이 충돌하는 민감한 사안에서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며 의미 있는 판결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5년 찬반 논쟁이 뜨거웠던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에서 동성 커플의 손을 들어준 것이 대표적인 예다. 개인의 존엄과 자유는 케네디 대법관에게 중요한 테마였다고 CNN은 전했다. 한편 케네디 대법관은 총기 규제나 이슬람권 5개국 국민의 미국 입국 제한 등의 사안에서는 보수 측에 무게를 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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