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재계 고위 인사 간의 공식적인 소통 채널이 열렸다.
경영 현안을 함께 고민하고 양국 정부에 건의하는 등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는 플랫폼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첫 만남에서 중국 측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를 성토하는 데 주력했고, 한국 측은 중국 내 애로 사항을 설명하는 데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한상공회의소와 중국국제경제교류센터(CCIEE)는 29일 중국 베이징에서 '제1회 한·중 고위 기업인 대화' 행사를 개최했다.
이날 양측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칙 준수 ▲보호주의 반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조기 타결 ▲일대일로와 신남방·신북방 전략 연계 ▲산업·기술 교류 협력 강화 등의 내용이 담긴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중국이 이 같은 재계 고위층 대화 채널을 연 것은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EU)에 이어 네 번째다.
정세균 전 국회의장과 중국 국무원 부총리를 지낸 쩡페이옌(曾培炎) CCIEE 이사장이 양측 위원장을 맡았다.
한국 측에서는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과 최태원 SK 회장,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손경식 CJ 회장, 박정원 두산 회장, 구자열 LS 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중국 측에서도 다이허우량(戴厚良) 시노펙 사장과 리둥성(李東生) TCL그룹 회장 등 주요 국유·민영기업의 핵심 인사들이 참석했다.
행사는 서로 덕담을 건네면서 시작됐다. 정 전 의장은 "한·중 관계의 진면목은 수교 26년의 짧은 기간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며 "역사적으로 신뢰와 협력이 바탕이 된 든든한 이웃"이라고 강조했다.
또 '황하 강물이 만 번 굽이쳐도 결국 동쪽으로 흐른다'는 의미의 만절필동(萬折必東)을 언급하며 "한·중은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역사를 지혜롭게 대처해 왔다"고 말했다.
쩡 이사장도 "1992년 수교 이후 양국 무역 규모가 51배 증가했고 지난해 교역액은 2800억 달러를 돌파했다"며 구체적인 수치를 거론한 뒤 "지난해 수교 25주년을 맞아 경제·무역이 다시 증가하고 민간 교류도 활발해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대화가 한·중 경제계의 상호 이해와 소통에 도움이 되고 관계 발전에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분위기가 무르익을수록 양측은 각자의 현안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중국 측은 미·중 갈등을 의식한 듯 미국의 일방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비판하며 한국 측의 공감을 이끌어내려 노력했다.
쩡 이사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한 뒤 미국이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고 있다"며 "중국과 한국 등 중요한 무역 파트너를 상대로 일방적인 관세 인상을 추진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의 태도는 개방적인 시장경제에 손해를 끼치는 한편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도 높이고 있다"며 "이는 한·중 양국에도 충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서도 "한·중은 중요한 이해 관계자로서 협력을 강화해 비핵화와 평화 발전 실현에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며 중국 정부의 입장과 대동소이한 주장을 제기했다.
중국 기업인들은 행사가 진행되는 내내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전쟁 도발을 성토했다.
한국 측은 경영 현장의 애로를 설명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이날 행사가 끝난 뒤 리커창(李克强)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도 다양한 내용의 건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행사에 참석한 한 재계 인사는 "삼성전자의 경우 중국 당국이 진행 중인 반도체 관련 반독점 조사가 공정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요청했고 전기차 배터리 문제도 언급했다"며 "경영 환경 개선 방안을 논의할 수 있는 실무급 대화의 필요성도 제기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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