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정부는 최대 6개월의 시정기간을 두고 주 52시간 위반에 따른 처벌을 유예하겠다고 밝혔지만, 미리부터 준비한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곤 실질적인 임금 감소와 급격한 근무 형태 변화에 따른 혼란이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과 생활이 균형을 이루는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이 실현될 것이라는 기대만큼이나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연습 끝, 이제부턴 실전
삼성과 SK, 현대차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의 분위기는 의외로 차분하다. 미리부터 예행연습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 회사들은 6개월의 유예기간도 크게 필요치 않은 분위기다.
한 재계 관계자는 "주요 기업들은 주 52시간 근무제를 앞두고 유연근무제 등 근무제도 개편에 집중했다"며 "아직 미진한 기업들 역시 6개월의 유예기간 동안 차분히 준비를 마무리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업들은 저마다 달라진 근무 형태를 속속 도입하는 등 새로운 시대 변화 준비에 한창이다.
삼성전자는 이달부터 ‘선택적근로시간제’와 ‘재량근로제’를 동시에 도입한다. 근로기준법 52조와 58조에 명시된 두 제도는 우선 연구·개발(R&D)과 사무직 직원을 대상으로 시행된다. 선택적근로시간제는 주 40시간이 아닌 월평균 주 40시간 내에서 직원들이 출퇴근시간과 업무시간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제도다. 재량근로제는 업무시간 관리 전반에 대해 직원에게 완전히 자율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2013년 공장 생산직에 주 40시간 근무제를 도입한 현대차는 지난 5월부터 본사 일부 조직에 한해 유연근무제를 운영하고 있다. 이 제도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집중근무시간’으로 지정한 대신 나머지는 직원 일정에 따라 자유롭게 근무하며 출퇴근이 가능하다.
LG전자도 지난 3월부터 사무직은 주 40시간, 기능직은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범운영하고 자체적으로 대비해왔다. SK하이닉스도 지난 1월부터 ‘딥 체인지’ 슬로건 아래 주 52시간 근무제 시범운영에 들어가는 등 R&D 비중이 작지 않은 전자업계는 발 빠르게 움직이며 대책 마련에 몰두하고 있다.
재계의 또 다른 임원은 "주 52시간 근무제는 2004년 도입된 주 5일 근무제만큼이나 국내 노동 환경에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며 "당분간은 변화를 지켜보며 보완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기업 부담은
하지만 노동시간 단축으로 기업생산성이 저하되고 추가고용으로 비용이 늘어날 것이란 우려 역시 여전하다. 일부에서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임금 감소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정부의 노동시간 단축 가이드라인이 노사 갈등의 또 다른 원인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근로시간 단축의 연착륙을 위해 탄력근무제 기간 확대 등 좀 더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제단체들 역시 근로시간 단축 연착륙의 해법으로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를 최우선으로 꼽았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란 최대 3개월 이내에서 평균 근로시간을 법정근로시간(주당 최대 52시간)에 맞춰 운용하는 제도다.
줄어든 근로시간을 대체하기 위해 노동시간을 유연하게 하자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연장근무를 연간 최대 720시간으로 한정하고 매월 휴일 근무시간을 포함해 100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했지만 노사 협약에 따라 특별조항을 넣으면 1년에 6개월은 제한 없이 초과 근무를 할 수 있다. 미국과 프랑스도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 기간은 1년이며, 독일은 기본은 6개월이지만 노사가 합의하면 기간을 더 늘릴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탄력적 시간근로제는 2주와 3개월 이하 등 기간이 한정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일본의 1년 단위 탄력적 근로시간제와 독일의 근로시간계좌제 등 해외 사례를 적극 참고할 필요가 있다”며 “2022년까지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포함한 유연근로제 전반의 개선사항을 반영해 그 활용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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