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달 29일 형법·조세범처벌법·공정거래법을 위반해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자는 항공사 등기임원이나 대표이사로 재직할 수 없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서울 남부지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바로 다음날이다. 조 회장은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강제적으로 등기임원 자리를 내려놓아야 되는 처지가 됐다.
그동안 조 회장을 비롯한 한진그룹 총수 일가에 대한 수사는 이례적이고 파격적으로 진행됐다. 조현민 대한항공 전 전무의 물컵갑질 사태가 발발한 지 두달여 동안 11개 사법‧사정기관이 마치 TF를 구성한 듯 한진그룹을 집중 조사했다. 10차례에 걸쳐 총수일가를 차례로 포토라인에 세웠다.
각기 혐의가 있다고는 하지만 상식적으로 정권의 의지가 아니라면 이같이 일사불란한 움직임은 불가능하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일각에선 한진그룹 사태를 조 회장을 비롯한 재계 길들이기로 활용하고 있다는 볼멘 소리도 나온다.
조 회장은 지난 정권에서도 소위 눈 밖에 났다는 평가를 받은 인물이다. 정부에 순응하는 기업인은 아니라는 얘기다. 조 회장의 올림픽 조직위원장 사퇴와 한진해운 퇴출 등이 전 정권에서 단행한 ‘길들이기’였다는 게 재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렇다고 마냥 조 회장의 무죄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수의 직원이 조 회장 일가의 일탈에 대해 법을 위반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이런 혐의가 사실이라면 법적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여론을 의식한 과도한 보여주기‧망신주기식 수사도 지양해야 할 부분이다. 구속수사가 필요한 지에 대해 엄중히 판단할 필요가 있다. 조 회장이 받는 혐의는 꽤나 오랜 기간 수사가 이뤄져 증거인멸의 우려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기업 총수의 도주를 우려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유전무죄’가 불공평하듯이 ‘유전유죄’ 역시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 사법기관이 법 앞에서는 세상 누구나 평등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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