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해 양동산성 집수지 전경. [사진=김해시 제공]
경남 김해시 양동산성에서 6~7세기 시대에 해당하는 유물들이 다량 출토돼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해시 대성동고분박물관은 올해 4월 12일부터 자체적으로 실시한 양동산성 학술발굴조사에 따른 자문회의를 이달 2일 개최하고, 그 결과를 3일 밝혔다.
시에 따르면 이번 학술발굴조사는 경상남도 기념물 제91호인 양동산성의 축조시기를 규명하고, 이와 더불어 집수지(산성 등에서 물을 확보하기 위해 만든 못)의 구조를 밝히고자 집수지 1기의 절반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영남지역 집수지 중 최대급에 해당하는 규모 길이 15.5m, 너비 22.8m, 최대깊이 3.4m인 평면 직사각형의 집수지가 확인됐다. 집수지의 내부에서는 6세기 후반부터 7세기대에 해당하는 유물들이 다량 출토됐다.
양동산성의 집수지는 금관가야가 멸망한 532년 이후에 만들어졌고, 산성의 축조시기 역시 집수지의 시기와 같을 것으로 조사단은 판단했다.
하지만 양동산성 내 집수지와 시기가 거의 같은 부산의 배산성 내 집수지의 평면형태가 원형인 점에서 차이가 난다. 이러한 차이점에 관해서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참가한 자문위원들은 의견을 모았다.

김해 양동산성 집수지에서 출토된 철기 유물. [사진=김해시 제공]
집수지 내부에서는 일상생활용 토기편들이 다량으로 조사됐다. 보존상태가 매우 좋은 철화살촉 2점과 철도끼 1점이 출토됐다.
이 외에 김해의 매장문화재 중 출토 예가 매우 적은 목간(붓글씨가 남아 있는 나뭇조각)과 바가지, 국자, 소쿠리 등 생활목기 및 짚신이 출토됐다.
특히 목간은 3점이 출토되었는데, 이 중 1점은 양동산성으로 운송한 곡물 꾸러미에 부착된 짐꼬리표로 확인됐다.
이 짐꼬리표에 적혀 있는 글자의 기재방식이 '마을이름+(사람이름)+곡물이름'의 순으로 적은 함안 성산산성 부엽층에서 출토한 목간의 기재방식과 거의 흡사하고, 성산산성 목간에 적혀 있는 '栗村(표촌)'이라는 마을이름이 양동산성 목간에도 적혀 있다.
따라서 김해시는 두 지역의 목간을 비교 연구하면 함안과 김해, 나아가 신라와 김해와의 관계 등을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김해시는 더 정밀한 판독을 위해 추가로 적외선 촬영 등을 시행하고 학계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양동산성 목간의 정확한 성격을 규명할 계획이다.
한편 시는 이 유적을 가야 멸망 이후 김해를 식읍으로 받은 구형왕과 신라와의 정치적 이해관계 및 당시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보고 추가 발굴 및 국가 사적 승격 신청 등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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