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일 인도를 방문하면서 신남방정책의 마지막 퍼즐이 맞춰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베트남을 비롯한 아세안 방문에 이어, 이번에 인도까지 포괄하는 투트랙의 신남방정책 전략을 추진한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아세안과 인도 시장은 성격과 특성이 확연히 다르다. 아세안 국가가 신흥국에서 탄탄한 중산층을 바탕으로 소비시장이 성장하고 있다면, 인도는 중국에 쏠린 글로벌 기업의 제조업 분야를 통째로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문재인 정부 역시 이런 점에서 아세안과 인도에 대한 신남방정책을 적절하게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9일 “이번 인도‧싱가포르 정상 순방은 신남방정책을 본격화하는 행보”라며 “정부는 ‘넥스트 차이나’로 주목받는 아세안, 인도를 4강에 준하는 파트너로 격상하고 새로운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남방정책 핵심 국가를 △베트남 △미얀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아세안 4개국과 함께 인도를 보고 있다”며 “베트남은 4대 교역 국가이자 최대 투자국이고, 베트남에는 5500여개 우리 기업이 진출한 것을 감안하면 우리와 베트남 간 경제협력에 큰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정부, 현지 유통망 구축·자금조달 등 신남방정책 세부 윤곽 제시
정부가 신남방정책에 대해 구제적 윤곽을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협력체계 구축 등에 대한 설명은 있었지만, 현지 특화 전략을 공개한 사례는 없었다.
김 본부장은 이날 세 가지 신남방정책 추진방향을 내놨다. 우선 한-아세안 자유무역협정(FTA), 한-인도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CEPA) 등으로 개방된 남방국가의 현지 유통망 구축에 나선다.
이는 우리 기업의 제품이 현지에 원활히 공급되기 위한 숨통을 틔워주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일례로 페인트 사례를 보면, 한-아세안 FTA로 말레이시아 시장 관세는 철폐됐지만 저절로 물건이 팔리는 것은 아니다.
유통채널을 확보해 물건을 지방 건설현장까지 보낼 수 있어야 하는데, 스스로 전국 유통망을 구축하는 것은 시간이 걸린다. 정부가 이런 문제점을 코트라 등 무역지원기관을 활용해 유통 채널을 뚫겠다는 것이다.
자금 조달도 정부 구상안에 포함됐다. 인도와 아세안이 적극적으로 인프라를 개선하고 확충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한 조치다.
김 본부장은 “인도와 아세안 지역은 제조업 역량을 강화하고 있어 우리 기업에는 기회의 땅”이라며 “우리 기업이 대규모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제조업 등의 분야에 진출해 원활한 기업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자금 조달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돕기 위해 정부는 기업들의 원활한 신용보증을 지원하고, 우리 은행들이 진출 기업에 자금을 적극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할 방침이다. 인도에 100억 달러 규모 금융 패키지를 제공해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를 우리 기업 수주에 지원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한국과 인도, 아세안 간 투자 촉진은 정부 역할이 가장 큰 부분이다. 정부가 직접 나서 기업인 협의회가 정례화·내실화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전략이다. 그동안 대기업 중심으로 열리던 한-인도 CEO포럼도 정부가 주관해 정기적으로 개최할 계획이다.
김 본부장은 “인도, 아세안과의 경제협력에 전환점이 필요하다”며 “그간 신남방국가와 협력 전략을 하나로 묶어서 진행했다면, 앞으로는 공통적으로 적용할 전략과 각 국가별 특성에 맞는 개별 전략을 따로 마련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아세안과 인도에 대한 맞춤형 전략을 구상한 데 대해 전문가들은 투트랙 전략은 긍정적이지만 균형적인 정책이 뒤따라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기존 자금지원 중심의 아세안시장 공략법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보다 세밀하고 촘촘한 전략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아세안, 2019년까지 5.5% 경제성장··· 2030년 4억9000명으로 인구증가
베트남을 비롯한 아세안 10개국 경제공통체인 아세안경제공동체(AEC)는 주목할 시장으로 부상 중이다. AEC 10개국 경제성장률은 2010년부터 2019년까지 평균 5.5%로 세계 경제 성장률 3.7%를 상회할 것으로 예측된다.
무역규모 역시 1990년 3066억 달러에서 2015년 2조2535억 달러로 약 7배가 증가했다. 세계 무역규모 대비 비중은 같은 기간 4.3%에서 6.3%로 확대됐다. 아세안 시장이 ‘포스트 차이나’로 불리는 이유다.
실제 아세안 시장은 중산층 확대로 구매력이 증가하고 있다. 아세안 중산층 규모는 2009년 8000만명에서 2030년 4억9000명으로 약 5.2배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풍부하고 젊은 노동시장도 강점이다. 경제성장 동력인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2055년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하며, 2035년에도 67% 수준을 유지할 정도로 가능성이 큰 지역이다.
싱가포르를 제외한 대부분 아세안 국가 임금 수준이 중국보다 낮다는 점이 강점으로 작용한다.
이용화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는 아세안 경제 성장에 따른 맞춤형 시장 공략 계획 수립을 통한 전략적 접근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국내 중소기업의 아세안 시장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아세안 국가별 진입장벽을 사전에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인도의 경우 모디 정부가 산업개혁의 보폭을 넓히고 있다. 문 정부의 신남방정책이 베트남 등 아세안 국가와 더불어 인도를 ‘투트랙’으로 분류하는 이유다. 인도는 중국의 제조업을 빠르게 흡수하며 ‘메이드 인 인디아’ 구축에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조충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은 “정부가 인도와 CEPA를 개선하고, ‘한·인도 CEPA 협력기금’을 조성해 활용률을 제고해야 한다”며 “대인도 경제협력 시범사업으로 ‘한국형 스마트시티’ 등 모디노믹스를 활용할 수 있는 전략사업 개발도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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