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한국전력이 심야 시간의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계획을 거듭 밝힘에 따라, 이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정부와 한전은 현재의 비정상적인 전기요금 체계를 조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산업계는 실질적인 전기요금 인상이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9일 정부와 한전 등에 따르면 한전은 5년 만에 산업용 심야시간(경부하) 사용 전기요금 인상 조정에 착수, 산업용 전기요금을 개정한 전기공급약관 변경(안)을 이사회 의결을 거쳐 4분기 중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출할 계획이다.
산업부는 기획재정부와 협의 후, 전기위원회 심의를 거쳐 올해 말께 최종 인가할 예정이다. 다만 이번 요금 조정에 가정용은 제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심야 시간의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리되, 다른 시간대 요금을 낮추는 방식으로 산업계 부담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심야시간대 경부하 요금을 도입한 애초 취지에서 벗어난, 전력 사용 구조를 바로잡겠다는 의미다.
1977년 도입된 경부하 요금제는 밤사이 전력 사용량이 적어, 부하가 적은 시간대에 적용되는 요금을 말한다.
원자력과 석탄발전소의 경우, 한번 가동하면 쉽게 끄지 못하기 때문에 낮이나 밤이나 똑같이 전력을 생산한다. 과거에는 심야시간에 전력 수요가 적었기 때문에 낮은 요금을 적용, 전력 사용이 낮과 밤으로 분산되는 효과가 있었다.
현재 경부하요금은 최대 부하 시간대의 반값이 되지 않는다.
산업용 전기요금의 6~7월 기준으로 오전 10시~낮 12시와 오후 1~5시 피크 시간(최대 부하)에는 kWh당 114.2~196.6원의 요금이 부과된다.
그러나 오후 11시~오전 9시 심야 시간(경부하)에는 52.8~61.6원으로 피크 시간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은 야간 전력 사용량을 크게 늘렸다. 한전에 따르면 산업용 전기사용량의 49%가 경부하 시간대에 사용된다. 중간부하 사용은 32%, 최대부하는 19% 수준에 그친다.
특히 고압B(154kV)와 고압C(345kV 이상)를 사용하는 대용량 전력 이용 기업(대기업)의 시간대별 전기 사용량은 경부하 53.4%, 중간부하 30.2%, 최대부하 16.5%로 격차가 더 벌어진다.
최근 김종갑 한전 사장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이 같은 문제점을 들어, 경부하 시간대의 산업용 요금 조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사장은 "심야 전기 사용량의 53%를 대기업이 쓰고 있다"며 "대기업이 중소기업보다 16% 싸게 전기를 쓰고 있는데, 중소기업에 대한 고려 측면에서도 이런 구조는 안 맞는다"고 지적했다.
정부 역시 산업용 경부하 요금 조정은 에너지 전환과 상관없이 에너지 소비구조 왜곡을 개선하고, 전력 소비를 효율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박원주 산업부 에너지자원실장은 "지나치게 저녁 시간대로 산업용 전기 사용이 옮겨가고 있다"며 "심야 시간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액화천연가스(LNG) 발전기까지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심야 시간에 전력 수요가 너무 몰려, 단가가 비싼 LNG발전기까지 돌려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박 실장은 "왜곡이 심하게 발생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을 정상화하기 위해 경부하 요금 개편이 필요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다만 박 실장은 "심야 시간대 요금을 조정해도, 수익이 한전으로 가지 않도록 하고 중부하나 최대부하 시간대 요금을 같이 조정해 산업계에 대한 요금조정 부담을 최소화하겠다"고 덧붙였다.
경부하 전기요금은 인상하되, 산업용 전기요금 내 조정을 통해 전체적인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뜻이다.
정부의 이 같은 설명에도 산업계는 이는 실질적 전기요금 인상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24시간 공장을 가동하는 곳이나, 심야시간대 전력수요를 다른 시간대로 바꿔야 하는 공장은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철강·정유·반도체 등 심야 전기 사용이 큰 업계에서는 산업용 전기요금 개편이 원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만큼, 글로벌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실에 따르면, 경부하 요금 할인 폭이 10% 축소될 경우 전기요금이 3.2% 인상되는 효과가 나타나며 경부하 요금을 적용받는 8만여개 기업의 전기요금 부담이 4962억원 증가한다.
또 최저임금 및 법인세 인상, 근로시간 단축에 이어 전기요금까지 인상하면 기업 부담이 심각하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낮 시간의 전기요금을 낮춰 기업 부담이 늘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데 이를 어떻게 지킬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크다"며 "전기요금의 원가 비중이 높은 철강 등의 업종은 피해가 몰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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