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영상톡]"불에 그을린 영수증 작품의 짠한 사연"..정혜경 작가,한국여류조각가회 특별전 선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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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성 기자
입력 2018-07-12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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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화랑 한국여류조각가회 창립 45주년 특별기획전 '아이우먼(I,WOMAN)' 17일까지

1400만 원짜리 작업복이 선화랑 쇼윈도에 걸렸다. 더 정확히 말하면 1400만 원어치 영수증으로 만든 옷이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와~ 영수증이잖아!"하고 탄성을 지른다.
이탈리아 장인처럼 영수증을 한 땀 한 땀 붙이는 억척스러운 노동에 놀라고, 작품 중간에 불에 그을린 영수증의 사연에 다시 한번 놀란다.
쇼윈도에는 영수증으로 만든 작업복 1벌과 어린이 드레스 2벌이 걸려있고, 선화랑 1층에 드레스 1벌이 더 걸렸다.
작품은 정혜경 작가의 '도시환영-완벽한 껍데기'로, 한국여류조각가회 창립 45주년을 맞이해 17일까지 열리는 특별기획전 '아이우먼(I,WOMAN)'에 출품한 것이다.

[정혜경 작가가 선화랑에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특별전이 시작된 지난 5일 선화랑에서 정혜경 작가(40)를 만났다.

정혜경 작가가 영수증을 작품의 오브제로 쓴 계기는 경제적 절망감에서 비롯됐다.

주부가 되면 가계부를 써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었던 정 작가는 10년간 영수증을 모았지만, 생활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아 절망감에 휩싸였었다.

순간적인 화를 못 참고 지금까지 모아온 10년 치 영수증에 불을 붙였다. 곧 마음을 추스른 그에게는 타다만 영수증만 남겨졌다.
 
그는 맨 처음에 영수증으로 죽음을 상징하는 '꽃상여'를 만들었지만, 결혼 10년 만에 아기를 갖고 5년이 흐른 지금에는 아이와 함께 어린이 드레스와 작업복을 만들고 있다. 

아기를 낳고 작품을 하기 더 어려운 환경이 됐지만, 애랑 같이 할 수 있는 영수증 작품을 할 때는 미소가 걸리고 마음이 평온해진다.

[선화랑서 전시 중인 정혜경 작가의 '도시환영-완벽한 껍데기' 중 어린이 드레스]


정혜경 작가는 작업복 작품에 대해 "이번 전시 주제가 아이우먼(I,WOMAN)이니까 여성으로서 가정주부를 생각했다" 며 "가정주부가 시급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2018년도 시급으로 내가 1년을 모으면 얼마나 모을 수 있을까 계산해서 주 5일로 8시간 근무하면 1400만 원이다. 1400만 원어치 영수증을 모아서 만든 작품이다"고 설명했다.

정 작가가 작업복을 만든 계기는 과거 용접 기능사 자격증까지 따면서 취직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경험에서 비롯됐다.

"아빠가 30년 목수 일을 하시다가 지금 경비를 10년째 하고 계신다. 경비가 한 달에 100만 원 조금 넘게 받는데, 어느 날 용접하는 아저씨가 잠깐 때우고 30만 원을 받는 것을 보고 너무 부러워하셔서 용접을 배우신다고 하셨다" 며 "저도 뭔가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조소과 나왔으니까 용접에 자신 있어서 기능사 자격증을 따볼까 하는 생각에 6개월을 노력했다"

[정혜경 작가의 '도시환영-완벽한 껍데기' 중 어린이 드레스의 밑단은 불에 그을린 영수증으로 돼 있다.]


결국 그는 용접기능사와 특수용접기능사 등 2개의 자격증을 따냈지만, 취업은 녹록지 않았다. 작업복 작품에는 당시 취업을 향한 열망과 현실의 벽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정혜경 작가는 그때 일취월장(日就月將)한 용접 기술을 작품 제작에 사용하고 있다. 작업복 작품도 안쪽의 뼈대는 얇은 쇠를 용접해서 만든 것이다.

사람마다 성장하는 계기가 있다. 정혜경 작가는 절망의 끝자락에서 잡은 용접 기술과 영수증 작업으로 지금은 레지던스나 미술관에서 많은 초대를 받고 있다.

[심영철 한국여류조각가회 회장이 '아이우먼(I,WOMAN)' 특별전 개막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한국여류조각가회 창립 45주년 '아이우먼(I,WOMAN)' 특별전은 45년간의 역사를 살펴보는 1부 '그녀의 역사'(Herstory)와 젊은 여성 조각가들의 작품을 통해 미래를 내다보는 2부 '고원'(Plateau)으로 나눠 열린다.
1부에서는 한국여류조각가회를 창립한 김정숙 작가를 비롯해 김윤신, 유영준, 윤영자, 강은엽, 고경숙, 김효숙, 황영숙, 김정희, 이종애, 신은숙, 조숙의, 심영철 등 14명 작가의 작품이 전시됐다.
2부에서는 김경민, 김리현, 김혜원, 배현경, 서광옥, 심부섭, 안재홍, 오제훈, 이정진, 이진희, 이혜선, 정혜경, 최은경, 한기늠, 허란숙, 황지선 등 69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김경아 전시 기획자가 '아이우먼(I,WOMAN)' 특별전 개막식에 참석해 전시를 설명하고 있다.]


지난 5일 열린 '아이우먼(I,WOMAN)' 특별전 개막식에는 심영철 한국여류조각가회 회장을 비롯해 김경아 전시 기획자, 원혜경 선화랑 대표, 김효준 BMW코리아 회장, 심재철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등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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