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정치 개입과 간첩조작 등으로 악명을 떨쳤던 국군기무사령부가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2014년 세월호 가족을 사찰한 정황이 담긴 보고서가 발견된 데 이어, 탄핵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지난해 3월 계엄령 선포를 검토하는 문건 등이 드러난 탓이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3월 3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기무사는 한민구 국방부 장관에게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이란 문건을 보고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부결 이후, 촛불 집회 참가자를 진압하기 위해 대비해야 한다는 내용의 문건이었다.
문건에는 “초기 국민의 계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고려해 먼저 위수령을 발령하고, 상황이 악화되면 계엄을 시행해야 한다"며 "과격시위 예상 지역인 광화문은 3개 여단, 여의도는 1개 여단이 담당한다”는 부대 운용 방안이 담겼다.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결정을 일주일 남겨둔 시점이었다. 한 전 장관 측은 “문건에 소개된 병력 부대 동원 등 내용이 공개될 시 사회적 파장이 예상되고, 군이 오해받을 소지가 있어 청와대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릴 뻔한 문건은 1년여 만에 수면 위로 떠올랐다. 군인권센터가 지난 3월 초 수도방위사령관(이후 합동참모본부 차장)을 ‘위수령 검토 문건’의 관련자로 지목하면서 국방부가 관련 감찰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무사 요원은 문건의 존재를 이석구 기무사령관에게 보고하기에 이른다. 이 사령관은 다시 송영무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했다. 송 장관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아닌 외부기관에 문건의 법리 검토를 지시했고, 수사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다.
송 장관은 청와대가 남북 정상회담 준비에 분주할 것으로 판단, 회담이 끝난 후인 4월 말께야 해당 문건과 함께 기무사를 고강도로 개혁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청와대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다 지난 5일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폭로로 문건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이 의원은 해당 문건 제출을 여러 차례 요청했으나 국방부는 6·13 지방선거 이전에 문건이 공개되는 것에 부담을 느껴 제출을 미뤘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날 군인권센터가 육군에서 탱크 200대, 장갑차 550대, 무장병력 4800명, 특수전사령부 병력 1400명 등을 동원하려던 구체적 계획을 추가로 폭로하자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문건의 내용은 과거 5·18 민주화운동의 악몽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국방부는 당일 기무사 개혁TF(태스크포스)에서 문건을 조사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4일 뒤 인도 방문 중이던 문재인 대통령이 독립적인 수사단을 구성, 의혹을 규명할 것을 특별지시했다.
문건 내용을 보면 공군과 해군을 작전에서 배제하고, 군령권이 없는 육군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임명하는 등 육군사관학교 출신 중심의 육군이 계엄을 주도하려는 의도로 읽혀 특수단을 ‘비육군, 비기무 출신’으로 꾸리라는 지침도 내렸다.
군인권센터는 지난 10일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과 소강원 기무사 참모장(육군 소장)을 내란예비음모 및 군사반란예비음모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냈다. 서울중앙지검은 다음날 공안2부(진재선 부장검사)에 사건을 배당했다.
송영무 장관은 지난 11일 기무사를 수사할 특수단 단장에 전익수 공군본부 법무실장(대령)을 임명했다. 30여명으로 구성된 특수단은 수사를 위한 행정절차를 마치고 내주부터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간다.
특수단은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이 누구의 지시로 작성됐고, 실행 의도가 있었는지를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실행을 위한 준비계획이라면 군사반란 혹은 내란음모로 연결지을 수 있어 이와 관련한 판단이 수사의 최대 쟁점이 될 전망이다.
2014년 세월호 유족을 포함한 민간인 사찰과 여론조작 의혹도 기무사의 직권남용의 대표적인 사례라는 점에서 기무사 전·현직 요원에 대한 전방위 수사가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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