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을 비롯해 미국발(發) 관세폭탄, 경기 침체 등이 우리나라 제조업을 흔들고 있다. 자동차는 물론, 조선, 철강 역시 불확실성 속에서 비전을 찾기는커녕,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우리나라 수출 주력산업의 상당부분이 제조업에 포진돼 있는 상황에서 기존 대기업조차도 버틸 힘이 없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제조업 분야에서 스타트업이 나오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흔히 쓰는 지퍼 디자인을 통해 세계시장을 누비려는 스타트업을 통해 또다른 각도에서 제조업의 희망을 찾아본다.
◇7조원 매출 YKK를 겨냥하다
누구나 쓰고 무엇인지 알지만, 사업 아이템으로 흘려버릴 수 있는 지퍼(Zipper). 지퍼를 주력 상품으로 내세우고 있는 ㈜제로에이트(대표 이강산)는 3년차 제조업 분야 스타트업이다.
YKK의 지난해 매출액은 7조원에 달한다. 흔히 1조원 규모의 비상장 스타트업을 유니콘 기업이라고 하는데, ㈜제로에이트가 바로 제조업을 기반으로 유니콘 기업을 향해 꿈을 키우는 스타트업이다.
지퍼 하나로 글로벌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YKK와 달리, 국내 지퍼 기업들은 영세하다. 매출이 저조하다보니 신제품 개발도 이뤄지지 않는 등 악순환에 시달린다. 더구나 전체 모든 공정을 가진 국내 업체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게 이강산 대표의 설명이다.
여기에 작은 지퍼 손잡이에도 YKK는 로고를 새겨넣는 등 브랜딩 작업도 소홀히 하지 않지만, 국내 기업들은 브랜드조차 없다. 의류업체의 브랜드를 새겨넣기 바쁘다.
이 대표는 지퍼에 대한 독특한 디자인을 통해 사용자들의 기대를 높일뿐더러 브랜딩을 병행해 ㈜제로에이트를 글로벌 스타트업의 궤도에 올려놓겠다는 포부를 전하기도 했다.
◇고교시절 아이디어가 창업 아이템이 되다
모든 스타트업의 공통점은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줘야 한다는 전제를 갖고 시작한다. 이강산 대표 역시 고교시절 발명한 자신만의 독특한 디자인을 활용해 창업의 길로 나섰다.
당시 그는 어떻게 하더라도 지퍼와 이에 맞닿은 옷이 씹히지 않도록 하는 디자인 개발에 몰두했다고 한다. 어떤 방향에서도 잡아당겨서 지퍼를 잠그더라도 부드럽게 기능을 하는 지퍼 설계가 그의 발명인 셈이다.
다만, 지퍼가 그의 스타트업 아이템이 될지는 자신도 몰랐다고 한다. 우연히 지하철을 타고 가던 중 모든 사람들의 옷에 지퍼가 달려있고 지퍼가 크기는 작지만, 이 시장 자체가 세계시장으로 봤을 때 엄청난 규모를 가질 것이라는 데 이 대표는 희망을 걸었다.
당초 설계해놓은 디자인을 통해 창업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고 사업화에 나섰지만 현실은 냉정하고 고달팠다. 실상 샘플 테스트를 하는 것부터가 고난의 시작이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작은 지퍼라도 샘플 제품이라고 해도 제작비는 부담하기 어려운 규모였다고 한다. 디자인으로는 해결됐지만, 실제 제작 과정에서 물리적인 제한성을 해결하는 데도 어려움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 과정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던 것은 신제품 샘플을 저비용으로 개발하는 노하우를 갖췄다는 데 있다.
실제 금형 샘플은 크기가 작더라도 1개당 700~800만원 선이다. 다만, ㈜제로에이트는 1개당 3만5000원으로 샘플 제작비용을 줄였다. 하나의 금형테스트는 1달 정도가 걸리는 데 제로에이트에겐 3일이면 충분하다. 이렇다보니 신제품을 저렴하게 수차례 실험할 수 있다는 게 ㈜제로에이트의 경쟁력으로 꼽힌다.
이를 토대로 현재 홈패션 브랜드 △아르페지오 △아이르 △아르페지오 베이직 등 3곳에 개발한 제품을 전량 공급하고 있다.
이 대표에게 지퍼는 모험에 불과했을 수 있다. 그러나 신제품을 짧은 기간 내 저렴하게 연구할 수 있는 노하우를 비롯해 자동차 시트 전문기업인 동일유앤지로부터의 기술 자문 지원 등이 ㈜제로에이트의 자산으로 평가된다.
이강산 대표는 "대학 선배들이 대형업체인 한솔섬유나 대형 봉제회사에 있어 다양한 자문을 받고 있다"며 "최근에는 코트라와 이탈리아 밀라노 현지 무역과 지사로 선정돼 해외 유통까지 기회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제조업 스타트업을 위한 지원 기회 절실
이강산 대표가 정부의 다양한 창업 정책 가운데 아쉬워하는 부분은 바로, 특정 산업으로 편중된 지원체계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스타트업 지원 사업의 경우, 4차 산업혁명에 따른 IT, 스마트팩토리 등 최근 추세를 반영한다. 그렇다보니 우리나라 산업의 흐름 속에서 전통적인 주력 산업으로 평가되는 제조업은 지원 대상에 오르기도 쉽지 않은 모습이다.
더구나 정권 교체에 따라 달라지는 산업 정책 속에서 제조업 스타트업은 의존할 곳을 찾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이처럼 정부의 다양한 지원도 필요하지만, 이강산 대표가 우선 강조하는 것은 냉정하게 소비자 관점에서 시장조사를 벌여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이 대표는 "정말 소비자들에게 물건을 파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라며 "정말 소비자에게 필요한 것인지, 나만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또는 감성을 건드리는 것인지, 편의를 제공하는지, 가치를 제공하는지 등을 객관적인 시각을 통해 살펴보고 시장의 가치를 파악하는 과정이 스타트업에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영상 제공=앙트러프러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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