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최우방 유럽이 트럼프발 무역전쟁 속에서 새로운 파트너 찾기에 분주하다. 유럽연합(EU)은 17일(현지시간) 일본과 자유무역협정(FTA)의 일종인 경제연대협정(EPA)을 체결하면서 세계 경제규모 30%를 아우르는 세계 최대 자유무역지대의 탄생을 알렸고 아시아, 중남미와도 경제 연대의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EU와 일본은 17일 도쿄에서 EPA 서명식을 열었다. 의식상의 절차였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무차별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와 무역전쟁을 벌이는 가운데 이뤄진 행사라 이목이 집중됐다. 도널트 투스크 EU 상임의장은 서명식에서 "우리는 보호주의에 맞서 연대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며 트럼프 행정부에 견제구를 던졌다.
이번 협정을 통해 EU는 약 99%, 일본은 약 94%의 관세를 폐지한다. 유럽위원회(EC) 자료에 따르면 이번 협정으로 양국의 무역규모는 16~24%가량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에서는 와인과 치즈 등 식료품 수출업체들이, 일본에서는 자동차 제조사들이 가장 큰 혜택을 누릴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은 일본 외에도 인도, 호주, 중남미 등과 자유무역협상을 가속하거나 중단됐던 논의를 재개하면서 미국의 보호무역에 맞서기 위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오랫동안 미국의 주요 무역 파트너였던 일본과 멕시코는 미국을 견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EU의 최우선 협상 대상이었다고 WSJ는 전했다.
유럽이 바빠진 것은 최대 무역 파트너 미국과의 갈등이 급격히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일주일은 65년 역사를 가진 대서양 동맹의 분열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서 방위비 분담금과 무역적자로 유럽을 거칠게 몰아세웠고 급기야 유럽을 "적(foe)"이라고 표현했다. 16일에는 미국이 자국의 철강관세에 맞서 보복관세를 부과한 EU, 중국, 캐나다, 멕시코 등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유럽이 '아메리카 퍼스트'를 앞세워 항복을 요구하는 미국 대신 다른 파트너를 찾아나서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뉴욕타임스(NYT)는 지적했다.
NYT에 따르면 EU가 캐나다와 맺은 포괄적 경제무역협정(CETA)은 작년 9월부터 잠정 발효됐고, 현재는 EU 28개 회원국의 비준이 진행 중이다. 지난 4월 EU는 멕시코와 기존 협정의 범위를 확대하여 갱신하기로 합의했으며, 베트남 및 싱가포르와는 자유무역협정을 위한 최종 협상 단계에 들어갔다.
그 밖에도 EU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 4개국으로 구성된 중남미 최대 경제공동체 메르코수르와 자유무역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호주·뉴질랜드·인도네시아와도 논의가 진행 중이며, 2013년 중단됐던 인도와의 자유무역협상도 재개됐다.
EU는 16일 EU-중국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과도 미국발 무역전쟁에 관해 논의했으나 대미 무역전선 구축과 같은 구체적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유럽은 중국과 전략적 연대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경제 개방속도와 지적재산권 침해 문제에서 미국과 같은 입장을 공유하고 있는 데다 깊은 이념적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유럽이 새로운 파트너 찾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미국과의 통상갈등은 반드시 풀어야 하는 숙제다. 유럽에게 미국은 부인할 수 없는 최대 안보 동맹이자 최대 수출 시장이다. 급격한 세계질서의 변화에도 당분간은 변하지 않을 사실이다. 비교하자면 유럽과 일본의 통상규모는 유럽과 미국의 5분의1 수준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EU에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수입차에 20% 추가관세 카드도 꺼내들 태세다. 수입차 관세 부과 시 EU는 수천억 달러 규모의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오는 25일 미국 워싱턴을 방문, 트럼프 대통령과 무역문제 해법에 대해 논의한다. 블룸버그는 EU 소식통을 인용, 융커 위원장이 주요 자동차 수출국들은 물론 미국과 EU가 자동차 관세를 낮추도록 하는 복수국 간 협정을 고려할 수 있다는 의향을 전달할 것 같다고 전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