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동차 무역과 관련해 유럽연합(EU)에 '엄청난 보복'을 경고했다. 다음주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 '공정한 자동차 무역협정'이 도출되지 않으면 강도 높은 보복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EU가 트럼프발 무역전쟁에서 반격을 본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발언으로, 이번 정상회담이 미국과 EU의 무역갈등 향방을 좌우할 분수령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1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각료회의에서 "공정한 협상이 아니면 엄청난 응징이 있을 것"이라며 "사용하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에겐 엄청난 힘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자동차가 큰 표적이 될 수 있다고 위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25일 백악관에서 융커 위원장과 만날 예정이다. 백악관은 두 정상이 외교·안보, 테러 대응, 에너지 안보, 경제 성장을 비롯한 주요 이슈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수입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에 추가 관세를 물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특히 EU가 자신의 수입 철강·알루미늄 폭탄관세 조치에 대한 보복을 철회하지 않으면 유럽산 자동차를 새 표적으로 삼을 수 있다고 위협했다.
미국 상무부는 1962년 제정된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수입산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이 국가안보를 위협하는지 여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상무부가 특정 수입품이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면, 대통령이 의회의 승인 없이 수입 제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수입 철강에 25%, 알루미늄에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할 때도 국가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수입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에 20~25%의 추가 관세를 물릴 수 있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직접 유럽산 자동차를 특정해 20%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수입 자동차에 2.5%의 관세를 물리는 데 비해 EU의 수입차 관세율은 10%나 된다고 비판했다. 수입산 소형트럭에 미국이 25%, EU가 10%의 관세를 물리고 있는 사실은 거론하지 않았다.
WSJ는 트럼프 행정부의 폭탄관세 조치로는 자동차가 최대 규모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지난해 수입한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이 각각 2120억 달러(약 240조원), 1470억 달러어치에 이르기 때문이다.
미국 인터넷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미국이 유럽산 자동차에 얼마라도 관세를 물리면 미국과 EU의 무역갈등이 급격히 고조돼 새 국면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해 미국의 유럽산 자동차 수입액이 430억 달러로, 철강·알루미늄 수입액 70억 달러의 6배가 넘기 때문이다.
EU가 이날 미국 인터넷 기업 구글에 역대 최대인 43억4000만 유로(약 5조7100억원)의 반독점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하면서, 미국과 EU의 무역분쟁은 한층 더 험악해질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자동차 폭탄관세 위협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자동차 폭탄관세 위협이 국가안보를 빌미로 무역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트럼프는 캐나다와 멕시코를 상대로 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은 물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에서도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지렛대로 삼았다.
이런 가운데 미국에선 트럼프 행정부의 자동차 수입 규제 움직임을 놓고 자동차업계와 의회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미국 자동차제조업연맹(AAM)은 19일로 예정된 공청회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수입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에 대한 관세 인상이 결국 소비자들에게는 엄청난 세금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하원 초당파 그룹 의원 149명도 자동차업계에 힘을 실어줬다.
미국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미국 상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마음을 돌릴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한 법안이 추진되고 있다고 전했다. 민주당의 더그 존스(앨라배마), 공화당의 라마 알렉산더 의원(테네시)이 궁리하고 있는 이 법안은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자체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상무부의 수입차 조사를 중단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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