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민간연구소와 언론과 재계에서 고용과 성장의 절벽 문제를 제기해왔는데도 장밋빛을 내려놓지 않던 정부가, 왜 갑자기 이런 잿빛 얼굴로 나타났을까.
정부의 해명은 이렇다.
(1)반도체를 제외한 대부분의 업종에서 수출이 정체되고 투자가 감소됐다. 세계 경제는 개선되고 있는데 한국 경제만 나빠졌다. 지표와 체감경기의 차이가 커졌다. 내수부진과 인구고령화가 맞물렸다.
(2)취업자 숫자 증가폭이 5월(7만2000명)이 8년여 만에 최악이었고, 6월에도 10만명대로 그치자, 30만명 목표를 낮출 수밖에 없었다.
소득성장 정책 1년···일자리 목표 반토막(동아일보)
37조(본예산과 추경 등 일자리예산) 퍼붓고도···고용·투자 반토막(매경).
조선일보는 마치 동아와 매경을 짬뽕한 듯한 제목을 달았다.
33조 쏟으면서도 '일자리 목표' 절반 낮췄다(조선일보)
매경과는 달리 33조원이 된 것은 2년간 일자리 창출에 쏟아넣은 예산을 어림잡은 숫자인 듯하다. 중앙일보는 10조원을 추가로 투입하는 것에 대해 도끼눈을 뜬다.
3% 성장 포기, 또 10조 쏟아붓는다(중앙일보)
성장부진이 심각한 상황을 강조하고, 그것을 다시 엄청난 세금으로 막으려 하고 있다는 비판을 매단 것이다. 이번엔 사태가 심각한지라, 경향신문까지도 비판에 나섰다.
성장·일자리 후퇴···재정지출 늘리는 '큰 정부'로(경향신문)
정책 후퇴라는 핵심을 표현했지만, 재정 지출 확대에 대해선 턱없이 모자란다는 지적에 나섰다. 일자리 감소와 최저임금 인상으로 곤경을 겪는 저소득층과 소상공인을 지원하기엔 예산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한겨레의 경우, 1면 하단에 2단으로 처리해 성장률 전망 후퇴 얘기는 줄이고, 저소득 근로장려금을 3배 늘렸다는 제목을 달았다. (뉴스는 이렇게, 달리 볼 수 있다.)
저소득 근로장려금 3배 늘려 3조8천억(한겨레)
이런 기사에는, 전문가들의 논평이 눈길을 끈다. 우선 그것들만 정리해보기로 하자.
"경제성장률 전망은 0.1%포인트 낮아졌을 뿐인데 고용전망은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성장해도 일자리가 늘지 않는 구조적 문제를 풀어야 한다."(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동아일보)
강 교수는 매경에도 출현해 훨씬 더 '센' 말을 했다.
"정부가 정책 실패를 자인한 셈이다. 대표적인 실패정책이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 근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친노동 정책이다."(강성진교수,매일경제)
"법인세를 올리고 최저 임금부터 공정거래, 지배구조, 사정기관 조사까지 기업을 옥죄면서 수익성을 낮추는 방향으로 정부정책이 진행된 상황에서 기업들이 투자와 고용을 늘릴 수 있겠느냐."(대기업 전략담당 부사장 모씨)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정부가 기존 전망을 고수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3% 성장 달성은 불가능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배현기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 중앙일보)
"최저임금 인상을 감내할 여건이 안되는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일자리 숫자와 소득을 늘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 새 일자리를 만드는 산업을 육성하고 고용 관련 시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데 무게를 둘 필요가 있다."(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중앙일보)
조선일보는 김태근 기자의 기사로 이렇게 꼬집고 있다.
"지금까지 기획재정부는 줄곧 경기회복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고 강변해 왔는데, 돌연 비관적 경기전망을 강조하고 나섰다. 그러나 정부는 심각한 경기상황과 일자리 부진이 최저임금 인상 등 반시장적 정책에도 원인이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았다."(김태근 기자, 조선일보)
필자는 어제 '뉴스겉핥기'에서 이 문제의 일단(一端)을 살펴본 바 있다. 그것도 여기 붙인다.
"정부는, 기업을 살리면 된다. 기업을 살리는 일은, 기업의 낡은 질서와 낡은 행태를 바로잡는 일이 '근치(根治)'일 수 있지만, 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인식과 장기적 프로그램을 갖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며 실효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정부가 진짜 지혜롭다면, 아웃풋을 나누는 노동개혁의 한 걸음 앞에, 인풋을 키우는 기업의 활력과 의욕 증진책을 먼저 고민하고 내놓았을 것이다.
기업들을 때려잡고 그들의 비위와 비리를 들쑤셔 공분을 자아내면서 세상에서 퇴출시키는 일 또한 국민 정의감의 관점에서 속시원한 일일지 모르지만, 그런 분위기 속에 기업인들이 슬그머니 소명의식과 자존감을 내려놓는 손실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정의는 '이념'이다. 이념이 앞서면, 현실에서 인간이 자발적으로 해내던 무엇이 위축된다는 것을 다른 이념사회를 통해 우린 생생히 보아오지 않았던가.
정부가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이, 피곤한 생각이며 위험한 생각이다. 정부는 바탕을 만들고 분위기를 만들고 동기를 유발하고 의욕을 움직이게 하고 치명적인 약자를 세심히 챙기는 것에 주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간 기업은 정치와 결탁해서 많은 부당한 권리와 이익을 챙긴 게 사실이다. 정치 또한 기업을 이용해 상응하는 것을 챙겨온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지금, 정치가 기업에 할 수 있는 미덕은, 경제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자율적 작동'을 돕는 일이다. 정치가 경제 위에 군림하면서 정권이 하고자 하는 목표를 채근할 '말'들로 보다가는, 이전 정권의 적폐를 추가하는 꼴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기업에 대한 상당한 인내심과 거리 두기가, 정치가 기업을 살리는 열쇠다. 기업의 분발이 너무나 필요한 시점이기에 기업을 놔둬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최근 상당한 진전을 보인 한반도 평화기류 또한, 향후 기업들의 의욕적이고 적극적인 주도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무역전쟁도 결국은 기업이 치러야 할 몫이다. AI와 스마트시대, 그리고 기후문제를 풀어갈 주체도 그들이다.
그들의 무엇을 어떻게 살려내느냐가, 많은 문제에 선행해야 할 문제의 핵심일 수 있다. 그건 아마 기업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이라고 말했지, 중소기업과 대기업을 나누지 않았으며 경제의 강자와 약자를 구분해 말하지 않은 뜻도 읽어주면 좋겠다. 그 원론적인 도식이 이 정부가 지닌 약점일지도 모른다." (뉴스겉핥기: 착한 정책에 왜들 그러시나, 아주경제 7월18일자)
이상국 아주닷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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