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와 태풍에 이어 35도를 넘나드는 이른 폭염으로 인해 농축산물을 중심으로 밥상물가가 들썩이고 있다. 밥상물가는 단기간에 경제정책을 흔드는 변수라는 점을 감안할 때, ‘안정세를 지속하고 있다’는 정부의 물가상황 인식에도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23일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이날 기준 시금치(4㎏)의 도매가격은 2만4800원으로 한 달 전(1만1415원)과 비교해 117.3%나 급등했다. 상품(1㎏ 기준) 가격은 1주일 만에 45.3% 올랐다.
무와 배추는 한달 만에 각각 59%, 101.6% 치솟았다. △풋고추(91%) △열무(54.4%) △오이(27.7%) △당근(11.3%) 등 주요 채소값도 상승했다.
찜통더위가 계속되면서 폐사한 가축은 이달 17일까지 79만3000마리에 이른다. 특히 일주일 만인 23일(125만2300마리) 45만 마리가 추가로 폐사했다. 8월이 되기도 전에 지난해 폭염으로 폐사한 가축 수(86만4335마리)를 훌쩍 뛰어넘었다.
폭염의 영향으로 농축산물 가격이 꿈틀대고 있지만, 문제는 농축산물 가격을 끌어내릴 만한 하방요인이 없다는 데 있다.
이미 6월 말부터 집중호우와 태풍 ‘쁘라삐룬’ 영향을 받아 농작물 7678㏊가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다. 이는 여의도(290ha)의 26.5배에 달하는 면적이다.
여기에 23일은 24절기 중 ‘염소뿔도 녹는다’는 대서(大暑)로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될 예정이다. 기상청은 7월 말까지 고온현상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면서 향후 폭염에 따른 피해는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농축산물 가격은 다른 물가지표와 달리 소비자가 느끼는 체감 정도가 가장 높은 분야다. 또 급격한 기상 악화나 가축질병‧병충해 등이 발생하면, 여파는 수개월이 지나도 계속된다.
지난해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로 한 판에 1만원을 웃돈 계란이나, 올겨울 한파로 작황이 부진해진 감자가 4월에 들어서며 가격이 전년보다 3배 이상 급등해 ‘금(金)감자’가 된 게 대표적이다.
이번 폭염의 여파가 오는 9월 추석명절을 앞두고 ‘밥상물가 대란’ 발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체감물가가 치솟으면 민간소비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내수에 찬물을 끼얹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아직까지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정부는 이달 9일 열린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 “하반기 전반적인 물가 흐름이 안정된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날 폭염 대비 농축산물 수급안정 대책을 내놓으면서 “고온 장기화 시 일부 품목 수급 불안정이 증대될 우려가 있다”면서도 “배추‧무 같은 일부 채소가격은 상승했지만, 아직까지 그 외 품목은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서민경제고통지수(생활물가상승률+체감실업률)는 2016년 10.5%에서 지난해 14.9%로 크게 증가했다. 주로 높아진 생활물가상승률에 기인한다.
오준범 선임연구원은 “기후영향 등을 받은 채소가격은 한두 달 정도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며 “이번 폭염의 경우는 상황이 심각해지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수급물량 조절 등을 펼칠 것으로 보여 추석까지 (밥상물가 상승이)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