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7월 26일. 오후 2시 20분 승객 110명과 승무원 6명을 태운 아시아나항공 733편 여객기가 김포공항을 떠났다. 이들의 행선지는 목포공항. 그러나 비행기는 목포에 다다랐음에도 고도를 낮추지 못했다.
승객들의 웅성거림을 뚫고 "폭우로 인해 착륙이 지연되고 있다"는 기내 방송이 몇 차례 반복됐다. 한순간 고도가 낮아지는가 싶더니, 굉음과 함께 기체가 붕 떠올랐다. 여객기가 야산 중턱에 부딪힌 것이다. 조종사의 무리한 착륙 시도가 부른 참사였다. 이 사고로 총 68명이 사망했다. 생존자는 대부분 뒷좌석에 앉은 승객들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생존자 한 명이 겨우 정신을 차렸다. 두 동강이 난 기체 사이를 헤집고 나온 그는 인근에 있는 마을을 찾아 사고 상황을 전했다. 200명 남짓 살고 있는 작은 동네인 마천마을 주민들의 신고로 2시간 만에 사고가 접수됐다.
주민 100여명은 곧바로 사고 현장을 찾았다. 이들의 눈앞에 아비규환의 광경이 펼쳐졌다. 종이짝처럼 찢긴 여객기 본체 사이에 기체 잔해와 사체가 흩어져 있었고, 부상자들의 신음 소리가 그 사이를 메우고 있었다. 주민들은 기체 속에서 채 빠져나오지 못한 부상자들을 끌어냈다. 입고 있던 옷과 나뭇가지로 만든 임시 들것으로 부상자들을 실어나르기 시작했다.
소방대원은 물론 경찰과 군인, 공무원까지 현장 구조 작업에 합류했지만 주민들은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지자, 이들은 집에서 손전등이나 석유 등잔을 가져와서 밤을 새웠다. 진입 도로가 없는 산악 지역에서 걸어서 시신을 운구하기도 했다. 생존자와 희생자 유가족에게 기꺼이 방을 내준 것도 주민들이었다. 거대한 비극 속에서 주민들의 온정이 더욱 두드러졌다.
대형 참사의 현장에 나타난 평범한 영웅들은 무수히 많다. 지난 10일 태국의 '동굴 소년들'이 기적적으로 생환할 수 있었던 까닭 중 하나도 전 세계인의 염원이었다. 국적을 불문한 90명의 잠수사가 기꺼이 나섰다.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는 보통의 마음'이라는 인지상정.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통의 마음 덕분에 인류는 종종 스스로 위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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