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가 정작 먹고 싶은 건강한 먹거리는 이렇게 구하기 힘들까?”
최근 서울 논현동 본사에서 만난 김슬아 마켓컬리 대표(36)는 자신을 “정말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미국, 홍콩, 싱가포르 등에서 학창시절과 직장생활의 대부분을 보냈던 김 대표는 한국에 돌아와 먹고 싶은 걸 제대로 못 먹으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김 대표처럼 ‘좋은 먹거리’를 찾는 동료들이 주변에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사내 맛집 동호회 멤버인 박길남 전략이사(CFO)와 의기투합해 시작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마켓컬리(현 법인명 컬리)의 전신인 ‘더파머스’였다.
2015년 1월 출범한 더파머스는 같은 해 5월 마켓컬리를 론칭하자마자 화제를 모았다. 신선 식자재를 사실상 당일 배송해 주겠다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의 아이디어만 믿고, 그 ‘떡잎’을 알아본 한 벤처캐피털(VC)이 무려 50억원을 투자한 것이 기폭제가 됐다.
이를 기반으로 마켓컬리는 산지직송 유기농 채소, 직구로만 구할 수 있던 해외 유명 식재료와 가공식품 등 기존 온라인 마켓과 차별화된 ‘프리미엄’ 식재료를 선보이면서 30~40 워킹맘들의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특히 오후 11시 전 주문하면 다음날 오전 7시까지 집앞에 배송해주는 ‘샛별배송 서비스’를 국내 최초로 도입, 신선식품 배송시장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슬아 대표는 “처음에는 정말 미련한 짓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처음 론칭한 상품이 상추인데, 채소류는 날씨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식재료라 가격 등락폭이 엄청나다.
유기농 상추 재배 농장주를 만나 겨우 설득해 납품 받았는데, 한때 폭우로 1㎏에 60만원까지 가격이 뛰었다. 그동안 6000원으로 판매한 제품이니 울며겨자먹기로 그냥 100배 넘게 손해를 보고 며칠간 팔았다.
당근만 해도, 농약 한번 뿌리면 정말 크고 보기 좋은 당근을 생산할 수 있다. 하지만 유기농 당근은 굵기조차 천차만별이라 상품성도 떨어진다. 그럼에도 ‘좋은 상품’을 포기할 수 없고 기후에 따라 강원도에서 제주도로 산지를 바꾸며 공수했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건강한 먹거리’였다. 전문 MD가 산지를 찾아다니며 농장주를 설득하며 직접 식재료를 발굴했다. 100% 직매입으로 중간 유통망을 없애니 백화점 식품관, 오프라인 프리미엄 슈퍼마켓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입점하는 모든 상품은 일주일에 한번 ‘상품위원회’를 통과하도록 했다. 김 대표가 직접 참석해 70여 가지 기준을 가지고 담당 MD들과 함께 모든 상품을 직접 살펴본다. 검토한 10개의 상품 중 1개 정도만이 통과할 정도로 엄격한 기준으로 상품을 선별한다.
이렇게 깐깐하게 선별한 상품이라도 고객들이 이해를 못하면 팔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소비자 교육’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일례로 브로콜리를 사실 1년 내내 팔 수가 없는데, 그동안 하우스재배 등에 익숙한 고객에게 설득이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금은 브로콜리는 제철이 아니라서 공급이 안 됩니다. 유기농 상품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라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구멍 송송 뚫린 쌈채소를 구매한 고객에게도 “날씨가 더워지면 벌레가 많이 생깁니다. 유기농이라서 그런데 정말 불만이시면 전액 환불해 드립니다”라고 안내하는 식이다.
진정성은 통했고, 고객들의 절대적 믿음은 매출로 이어졌다. 실제 한번 주문한 고객은 절반 이상 꾸준히 재구매를 하고 있다.
초기 3040 주부 중심에서 이제는 고객 연령층이 20대와 50대로 확대되고 있는 점도 고무적이다. 여기다 미혼, 1인 가구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혼자라도 ‘한끼를 먹어도 제대로 잘 먹고 싶다’는 소확행 트렌드가 마켓컬리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는 것이다.
론칭 3년 만에 △일 평균 주문량 8000건 △회원수 60만명 △월 매출 100억원 △판매상품 5000여개(올 3월 기준)란 숫자가 이를 증명한다.
김 대표는 “건강한 식재료는 우리가 구할 테니, 고객들은 마켓컬리만 믿고 자신의 일에 집중하면 된다”고 자신했다.
마켓컬리의 급성장에는 현재 유통업계의 새벽배송 시장 전쟁의 포문을 연 ‘샛별 배송’을 빼놓을 수 없다.
워킹맘들은 “자기 전에 주문하니 자고 나서 식재료가 도착해 있는” 그야말로 신통방통한 마켓컬리의 배송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주부들은 “그동안 마켓컬리 없이 어떻게 장보고 살았나 모르겠다”고 할 정도로 반응은 뜨거웠다.
마켓컬리가 처음 샛별배송을 시작하기에 앞서 필수적인 것은 ‘냉장·냉동 차량’이었다. 그러나 이를 제안한 국내 주요 택배사 등 물류업체들은 모두 손사래를 쳤다. 수익성이 없고,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택배’로만 수익이 나니 별도의 차량을 갖추는 것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서였다.
김 대표는 “정말 모든 택배사에서 퇴짜를 맞았어요. 결국 저희가 자체 배송 차량을 갖추고 샛별배송을 시작한 지 1~2년 새 다들 저희처럼 새벽배송 시장에 나서더라고요. 3년 전에 같이 하셨으면 새벽배송 전체 시장 수준도 향상되고 소비자 만족도 훨씬 더 좋았을텐데”라며 헛헛한 웃음을 지었다.
마켓컬리가 시작한 새벽배송은 사실 롯데나 신세계 등 유수의 유통기업도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지금 여러 기업들이 앞다퉈 시장에 나서는 것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김 대표는 그들이 ‘마음을 먹지 않아서’라고 잘라 말했다. “마켓컬리가 추구하는 것은 엄선한 상품을 고객들이 두말 않고 믿고 살 수 있게 하는 것이었어요. 샛별배송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어요. 정말 자본도 많이 들어가는 게 사실이에요. 마음이 없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죠”라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회사 임직원들을 두고 ‘방망이 깎는 노인’이라고 칭했다. 마켓컬리 MD들은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유기농 식재료를 찾고, 때로는 미국이나 유럽까지 날아가 제품을 공수해온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도 종종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초심을 잃지 말자고 다같이 다짐한다.
김 대표는 “저희가 3년 새 규모가 많이 커지고 매출도 늘었지만, 제품 하나 팔겠다고 일일이 MD들이 해외출장을 자주 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죠. 금전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고요. 그렇지만 묵묵히 저희 일을 하면 고객들이 알아주실 거라 믿어요. 지금 그런 믿음으로 성장하고 있고요”라고 말했다.
그런 믿음을 바탕으로 서울·수도권에 국한된 마켓컬리 서비스를 전국으로 확대하고 싶은 욕심도 있다. 김 대표는 “전국 곳곳에서 수요가 있는 것도 잘 알고 있어요. 당장은 또 투자를 받고 규모를 확대해야 하지만, 언젠가는 꼭 해야 할 일이라며 신중히 방향을 모색하고 있어요. 그들만의 마켓컬리가 아니라 ‘모두의 마켓컬리’ 됐으면 하고 꼭 그러고 싶네요”라고 웃어보였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