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적자 해소를 위해서라면 동맹과 숙적의 구분 없이 무차별 관세폭탄을 투하하던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연합(EU)과의 무역전쟁에서 전격적으로 ‘휴전’에 합의하면서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전술이 수정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5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 백악관에서 장 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회담 끝에 무역갈등 완화를 위한 협상을 진행하기로 했다. 또한 EU는 미국산 대두와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을 확대하고 관세 인하에 노력하기로 했고, 미국은 유럽산 자동차에 관세를 부과하려던 계획을 유예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강한 무역공세에서 한발 물러난 것은 종전에 고수하던 미국 우선주의에 전술적 변화를 주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 선거를 앞두고 전방위적으로 무역공세를 강화해 왔지만 자유무역의 오랜 수호자인 공화당의 반발과 관세부과에 따른 사업 여파를 우려하는 재계의 불만을 무시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WSJ는 지적했다.
미국 의회는 대통령이 마음대로 무역정책을 수립하는 자유를 구속할 수 있는 법안을 추진함으로써 자유무역을 거스르는 트럼프 대통령을 저지하기 위해 나서는 한편, 미국 제조업체들이 보호무역조치로 인해 비용이 증가하고 해외 매출이 떨어지고 있다는 불만의 소리를 적극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미국 의회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에 건넨 화해의 손짓을 중국에도 건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WSJ에 따르면 케빈 브래디 공화당 하원 세입위원회 위원장은 26일 트럼프 대통령이 융커 위원장과 회담한 것과 같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무역에 관한 정상회담을 열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34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했으며, 향후 2000억 달러어치 수입품에 추가 관세를 경고한 상태다.
일각에서는 조심스러운 기대감을 내비친다. 전 베이징 주재 미국 외교관이었던 앤디 로스먼 매튜스 아시아 투자전략가는 블룸버그에 “트럼프 대통령이 융커 위원장과 기꺼이 휴전에 합의한 것은 시 주석과도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는 긍정적 신호”라면서 “시 주석은 융커 위원장보다 더 많이 양보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본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더 구체적인 합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미국이 EU와 휴전한 것은 미중 무역전쟁에 힘을 쏟아붓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도 적지 않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골드만삭스는 “우리는 미국과 EU의 긍정적 국면이 중국을 비롯한 여타 무역갈등에까지 이어질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 반대로 본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소재 메이뱅크 킴 엥 리서치의 추아 학 빈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역시 “미국과 유럽의 휴전은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대한 압박에 보다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승리를 선언하면서 무역전쟁 위협이 통하고 있다고 과시할 것이다. 결국 미국과 유럽의 휴전은 미중 무역전쟁의 전면전 가능성을 높인 셈”이라고 진단했다.
'트럼프의 경제 책사'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의 발언도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그는 26일 폭스비즈니스 인터뷰에서 "중국에 맞서 미국과 EU는 동맹을 맺게 될 것"이라며 "융커 위원장도 중국 이슈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을 도울 의사가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밝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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