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에 조건 없이 만나자고 제안했다. 미국의 대이란 경제 제재가 임박하면서 이란 경제가 동요하는 가운데 이란이 미국과의 대화에 응할지 관심이 쏠린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와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나는 만약 이란이 원한다면 만날 것이다. 그들이 준비가 되어 있는지는 모르겠다”면서 “만약 우리가 다른 협정처럼 종이만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기꺼이 만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내 회동을 기대하면서 “이란은 현재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란 핵합의를 끝냈다. 터무니없는 합의였다. 이란도 결국엔 만남을 원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유화적 제스처는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전쟁을 시사하는 과격한 설전을 주고받은 지 불과 일주일 만에 나온 것이다.
브루킹스연구소의 토머스 라이트 외교정책 전문가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트럼프의 대화 제의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방식을 다시 한번 보여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란은 아직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하산 로하니 대통령의 참모 하미드 아부탈레비는 트위터에 “핵합의로 돌아가고 이란의 국익을 존중하는 것이 대화로 가는 길”이라고 적었다.
이란 지도층은 미국에 강경론을 고수하고 있지만 경제 동요로 인한 국민의 불만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란 리알화 급락과 물가 급등으로 인해 국민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는 탓이다.
제재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지만 이란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짙어지면서 리알화는 올해 들어서만 달러 대비 60% 추락했다. 경제 제재가 임박하면서 리알 하락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29일에만 리알화 가치가 12% 떨어졌다. 이란은 제조업 기반이 약한 탓에 생필품 완제품이나 중간재를 수입에 크게 의존한다. 따라서 리알화 가치 하락은 물가 상승으로 직결된다. 이란 중앙은행은 22일을 기준으로 연간 물가상승률이 10.2%라고 발표했다. 물가 급등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도 벌어지고 있다. 재계를 비롯해 많은 이란인들은 정부가 미국에 실용적 접근법을 취하길 기대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한편 외신들은 지금까지 이란에 강경 입장을 고수하던 트럼프 대통령이 돌연 대화로 돌아선 것은 미국의 대북 접근법을 떠올리게 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거친 말폭탄을 주고받은 지 10개월 만에 싱가포르에서 웃으며 회동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강하게 압박하면서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낸 것을 무척 성공적이라고 자평해왔다.
30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을 언급하면서 “9개월 동안 미사일이 발사되지 않았고 북한에 억류됐던 사람들도 돌아왔다. 긍정적인 많은 일들이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란은 북한과의 비교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마무드 바에이즈 로하니 대통령 비서실장은 현지 매체에 “이란 정부와 이란 국민들의 특징은 압력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면서 “트럼프는 이 점에서 이란이 북한과 다르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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