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8월 2일. 남태평양 인근에서 사모아로 향하던 국적 원양어선 페스카마 15호에서 선원 11명이 살해당했다. 죽은 이들과 함께 일했던 중국 동포(조선족) 6명의 소행이었다. 참극의 무대가 된 페스카마호가 한국을 떠난 것은 사건 발생 두 달 전인 6월. 한국인 7명과 인도네시아인 10명이 승선한 배는 도중에 조선족 7명을 태우고 남태평양으로 향했다.
조선족 출신 대부분은 고향에서 농사를 짓던 이들이었다. 원양어선에서의 고된 조업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한국 선원들이 일상적으로 행했던 구타와 욕설은 이들을 더욱 궁지로 몰았다.
결국 선장 최기택씨의 '교육' 중에 사단이 일어났다. 그물을 던지는 방법을 가르치던 최씨는 유난히 배우는 속도가 느린 조선족 이모씨를 몽둥이로 구타했다. 이씨가 곧바로 최씨의 뺨을 올리면서, 한국인과 조선족 선원들 사이의 반목이 극에 달한다. 급기야 도끼와 칼까지 들고 대치했던 양측은 최씨의 사과로 사태를 봉합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갈등의 불씨는 여전했다. 이후 조선족 선원들은 하루 8시간 노동 등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조업에 불참했다. 최씨 등 한국인 간부 선원들은 더 이상의 조업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이들에게 하선을 통보한다. 조선족 선원 중 6명은 "집까지 팔아 여기까지 왔는데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며 반란을 일으키기로 결정했다.
범행 당일 새벽 계획대로 이들은 한국 선원을 한명씩 불러내 흉기로 살해했다. 계획에 동조하지 않던 동료 조선족 역시 집단으로 구타한 뒤 바다에 수장했다. 인도네시아 선원들과 배를 운전할 한국인 1등 항해사 한 명만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24일 배가 일본 근해에 다다랐을 무렵, 페스카마호는 연료가 모두 소진됐다. 배가 좌현으로 기울기 시작하자, 선원들 모두 어획물을 반대편으로 옮겨 균형을 잡기 위해 어창으로 들어갔다. 이때 한국인 항해사와 인도네시아인들이 합심해 조선족 선원들을 가두는 데 성공했다. 대법원은 이들 중 주동자 1명에게는 사형, 나머지 5명에게는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페스카마호 사건은 그저 우발적으로 일어난 살육극일까. 20년이 지난 현재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공익법센터 어필이 발표한 보고서 '바다에 붙잡히다'에 따르면 '이주 어선원'들의 일일 노동시간은 여전히 15~20시간에 달한다. 장시간의 노동과 열악한 생활환경에도 불구하고 2016년 기준 이들의 최저임금은 52만원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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