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스페셜-영원한 청년 의사 윤봉길①] 日帝 범접 못할 섬 ‘島中島’에서, 국권회복 큰뜻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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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라 기자
입력 2018-08-01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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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민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매헌

[독립기념관 내 윤봉길 의사 동상]


매헌의 출생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純宗) 2년. 일제의 침략 야욕으로 조국의 운명이 한치 앞을 볼 수 없던 바로 그 무렵, 1908년 6월 21일(음력 5월 23일) 초저녁 8시경 나의 백부 매헌 윤봉길 의사는 우렁찬 탄생의 일성(一聲)을 쏟아내며 세상의 빛을 보았다.
윤봉길 의사는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178번지에서, 아버지 윤황(尹墴)과 어머니 김원상(金元祥) 사이의 5남2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매헌이 태어난 집은 시량리 마을의 ‘작은 섬’에 있다. 이곳은 덕숭산(수덕산)에서 흐르는 물줄기가 목바리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고구마 모양의 자그마한 섬’을 이루고 다시 합쳐져 흐르는 곳이어서 육지 안의 섬이었다.
당시 마을 사람들은 이 마을에 흐르는 시냇물이 목계(沐溪)이기에, 시량리를 일명 목바리라고도 불렀다. 후일 장성한 매헌은 이곳을 ‘한반도(韓半島) 중 일제가 발을 들여 놓지 못할 섬(島)’이라고 주창하며 ‘도중도’(島中島)라고 명명했다.

 

[상해의거 직후 언론에 보도된 윤봉길 가족사진 동아일보 1932년 5월 3일]


매헌의 집안내력
매헌은 파평 윤씨 32세손(世孫)이며 조선후기 대표적 유학자 윤승례의 아들 윤규를 파조로 하는 제학공파(提學公派)이다. 본명은 우의(禹儀), 자(子)는 용기(鏞起), 호는 매헌(梅軒)이다. 봉길(奉吉)은 별명이며, 망명시절 희의(熙儀)라는 가명도 사용했다. 매헌의 시조는 신달(고려 개국 삼한공신)이며, 파평 윤씨는 조선시대 왕비 5명과 문과 급제 430명을 배출한 명문가이다. 우리 조상의 얼과 숨결이 담긴 만주 땅을 되찾는 위업을 달성한 고려의 성웅(聖雄) 윤관 장군도 매헌의 27대조다. 윤관 장군은 가문을 빛낸 큰 거목으로서, 어린 시절 매헌은 집안 어른들로부터 그의 우람한 기개와 영웅담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으며 자랐다.
매헌의 선대(先代)는 가문의 명망(名望)만치 문중에 기복이 심하였다. 숙종 때는 사색당쟁에 휩쓸리는가 하면, 14대조 때(명종 원년)는 왕실의 외척인 대윤(大尹)과 소윤(小尹)의 반목으로 일어난 을사사화(乙巳士禍)에 연루되어 그 화(禍)를 피해 낙향하게 되었다. 이후 경기도 의정부, 수원, 충북 청원, 충남 당진을 거쳐 매헌의 증조할아버지 재(梓)가 26살 무렵덕산에 정착했다.
덕산 문중을 일으킨 분은 매헌의 조부 진영(振榮)이다. 할아버지는 평생 땅만 일구어 ‘윤두더지’라는 별명을 얻었다. 타고난 근면성과 억척 덕분에 일 년에 벼 이백 석 이상을 수확해 ‘내건너 왕국’을 이룩했다. 마을사람들은 시냇물 건너편 고구마 모양의 섬을 ‘내건너’라 부르며, 부농(富農)으로 일가를 이룬 할아버지와 할머니 원(元)씨를 존경했다.
아버지 윤황은 진영의 둘째아들이다. 형님인 윤경(尹坰, 매헌의 큰아버지)과는 달리 학문도 접하지 못하고, 평생을 흙과 더불어 살아온 평범한 농부였다. 글공부에 대한 미련은 있었으나, 가세(家勢)가 그리 넉넉지 못해 농사일을 도맡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불평 없이 세태에 따르며, 큰 욕심도 부리지 않고, 화목한 가정을 위한 선량한 농민이었다.
어머니 김씨 부인은 홍성군 홍북면 갈뫼(직절마을)에서 아버지 김인제(金仁濟)와 어머니 천안 전씨(全씨) 사이에 장녀로 태어났다. 출가 전 친정에서 <천자문>(千字文)을 비롯해 당시 <소학(小學)>까지 깨쳤고, 한글도 익혀 국한문(國漢文)에 막힘이 없었다. 당시 부녀자로서는 상당한 학식과 교양을 지닌 여성으로 성품마저 어질고, 자녀들에 대한 교육열도 대단했다. 매헌이 지덕체(智德體)를 고루 갖추고, 남다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어머니의 지극 정성이 큰 영향을 끼쳤다.
맏아들 매헌 밑으로는 남동생 성의(聖儀), 여동생 순례(順禮), 남동생 남의(南儀), 여동생 임의(姙儀), 남동생 영의(英儀), 준의(俊儀)가 있다. 당시 시량리 마을에는 매헌 집과 그의 큰집만이 아들 5형제씩을 두었는데, 아들을 중시하던 시절이라 마을 어른들은 ‘내건너 왕국을 이룬 윤두더지가 복을 받아 많은 손자들을 얻었고 그 손자들은 수암산 5형제바위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고 부러워했다.

 

[중수된 생가 광현당(光顯堂)]


매헌이 태어난 곳의 지세
매헌이 태어난 곳의 배산(背山)은 가야산이고, 임수(臨水)는 목계천이다. 가야산은 신라 때 산사(山寺)를 짓고, 나라에서 제사를 지냈던 영산(靈山)으로 유명하다. 그래선지 개심사, 원효암, 보덕사, 일락사 등 명성 높은 사찰들이 많다. 흥선대원군은 이곳이 2대에 걸쳐 왕위에 오를 수 있는 명당이란 풍수지리설을 믿고 이곳에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세웠다.
매헌의 집의 조산(祖山)은 용봉산이고, 안산(案山)은 용봉산 북릉 최고봉인 수암산이다. 용봉산은 산 전체가 기묘한 바위와 봉우리로 이루어져 ‘제2의 금강산’이라 불릴 만큼 아름답다. 이 산에는 장군바위, 두엄바위, 치마바위, 오형제바위, 용바위 등 기암괴석이 많다. 두엄바위는 풍류객들이 모여 시회(詩會)를 여는 곳으로, 1922년 매헌은 이곳에서 개최된 충추절 시회에서 ‘학행(學行)’이란 한시로 장원을 차지했다.
인걸지령(人傑地靈)이란 말이 있듯이, 이곳은 땅의 신령스러운 기운을 받아 많은 걸출한 인재를 배출했다. 매죽헌 성삼문, 만해 한용운, 백야 김좌진, 추사 김정희, 자암 김구, 아계 이산해, 정헌 이가환 등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는 인물들 모두가 이곳 출신이다.

‘난세(亂世)가 영웅을 만든다’ 했는가
매헌이 태어나던 바로 그 무렵, 대외적으로는 강대국들이 약소국을 빼앗으려 싯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침략을 일삼는 때였다. 우리나라도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는 일제의 침략으로 인해 암울한 기운이 도처에 뻗쳤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본에 외교권을 빼앗기자,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나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수많은 사람이 전사했다. 우리 강산은 일본의 압박과 강탈로 헐벗고 피폐해졌다. 바람 앞에 등불마냥 위태로웠다.
이 무렵 매헌을 잉태한 김씨 부인은 “흡사 용을 방불케 할 만큼 길이가 한 발이 넘는 우람한 구렁이가 입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꿨다. 범상치 않은 태몽 때문인지, 매헌은 어머니의 지극 정성의 가르침과 조부모와 양친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또한 풍광이 뛰어난 산세와 맑은 시냇물, 드넓은 들판이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를 보듯 아름다운 곳 목바리. 이 고장에서 배출한 의인충절(義人忠節)의 감명 깊은 이야기는 어린 매헌이 푸른 꿈과 기상, 호방한 기질을 키우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이렇듯 매헌은 어린 시절 은연중에 시절의 아픔을 온몸으로 체화하며, 훗날 우리 민족의 걸출한 영웅으로 예비 되어 있던 것은 아닐까. 이 모든 조화가 예사롭지 않은 까닭이다.

 

[광현당(光顯堂)]


민족운동의 산실, 모정
후일 장성한 매헌은 자신이 태어난 고구마 모양의 작은 섬에는 ‘한반도 중 일본군이 발을 들여놓지 못할 섬’이라는 의지로 ‘도중도’(島中島)란 이름을 붙이고, 이곳에 모정(茅亭, 정자)을 건립했다. 이곳 모정에서 매헌은 틈틈이 자신의 인생행로를 설정하면서, 농민의 실력배양과 경제적 자립을 위한 농민계몽운동을 통한 국권회복을 구상했다.
매헌이 이 모정에서 구상하고 꿈꿨던 이상은 상해의거의 근간이다. 그런데 민족운동의 산실인 모정이 1974년 생가(生家)를 보수하면서 철거돼 지금은 그 흔적조차 사라졌다. 즉시 모정을 복원해야 한다. 매헌이 도중도 모정에서 지은 한시(漢詩) 수양(修養)에는 그의 뜻과 기상이 오롯이 담겨 있다.

수양(修養)
목계일곡수(沐溪一曲水) 목바리에 구비 구비 흐르는 한줄기 시냇물
수덕원자류(修德源自流) 수덕산 깊은 근원에서 샘솟는 맑은 물줄기로
척오신오예(滌吾身汚穢) 내 몸의 더러운 때 깨끗이 씻어 버리고
무진격천추(無盡格千秋) 그 시냇물 마르지 않고 영원히 흐르리.


윤주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부회장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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