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 죽겠다'는 아우성이 지구촌을 흔들고 있다. 일본에서 이미 수백명의 온열질환 사망자가 난 걸 보면 엄살이 아니다. 살인적인 건 더위뿐만 아니다. 초현실적으로 덥고 건조한 날씨로 곳곳에서 산불, 가뭄이 한창이다. 지난달 수은주가 한때 섭씨 36도까지 치솟은 그리스 아테네 인근에서 발생한 산불은 80여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살인적인 폭염에 따른 가뭄은 살인적인 폭력과 범죄도 부추긴다. 찌는 듯한 더위가 불쾌감을 자극하는 데다, 가뭄이 식량난을 부채질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폭염, 폭우, 한파, 폭설 등 이례적인 기후의 공습이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경고한다. 인류가 온실가스를 줄여 지구 온난화를 막는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지 않으면 '진짜 지옥'을 맛볼 수 있다는 경고가 줄을 잇고 있다.
지금 같은 폭염이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이 될 수 있다는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최신 보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코노미스트는 이상기후가 지구 온난화의 결과물이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일련의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한 예로 유럽에서는 2003년 '1000년 만의 폭염'으로 7만 명 이상이 숨졌다. 한 연구진은 이듬해 인류의 활동이 2003년 유럽 폭염 가능성을 2배 높였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뒤따라 발표된 138개 논문은 144건의 이상기후 사례를 다뤘는데, 폭염 사례 48건 가운데 41건이 인류의 발자국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분석했다. 인류의 활동이 없었을 경우 일어났을 기후 패턴을 컴퓨터로 분석해 실제 기후와 비교한 결과다.
지구 온난화를 문제삼는 전문가들은 '극한의 땅'인 북극과 남극이 더 따뜻한 저위도 지역보다 온난화 속도가 빠르다는 데 주목한다. 이에 따른 기온차 저하로 제트기류의 속도가 떨어져 폭염을 유발하는 기압과 전선의 체류 기간이 늘어나게 됐다는 것이다. 폭염이 뉴노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 배경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최근 폭염이 산불을 일으킬 정도로 건조한 상태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찜통 더위', '가마솥 더위'라고 하는데, 현실과는 괴리가 있는 셈이다. 지금 더위는 적어도 사우나 같은 더위가 아니다. 인간이 더위를 견딜 수 있는 건 땀을 내고, 이 땀이 증발하면서 피부를 식히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는 건조한 50도가 후텁지근한 30도보다 나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습도가 높으면 땀이 증발할 여지가 없다.
전문가들은 젖은 수건으로 온도계를 감싸고 재는 '습구온도'가 35도 이상이 되면, 선풍기 옆에 알몸으로 누워있는 건강한 젊은이조차 6시간 안에 사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현재 습구온도는 웬만해서는 31도를 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지 않으면 아부다비와 두바이를 비롯한 페르시아만 주요 도시의 습구온도가 이번 세기 말에 35도를 넘을 수 있다고 본다.
인류가 1880년대 산업혁명으로 온실가스를 대거 배출하기 시작한 이후 지구의 평균기온은 약 1도 올랐다. 기후 전문가들은 지구 기온이 산업혁명기보다 1.5도 이상 오르면 생태계와 식량안보 등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전 세계 195개국이 2015년 서명한 파리기후협약이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산업혁명기 대비 2도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걸 목표로 삼은 배경이다. 서명국들은 기온 상승폭을 1.5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유엔 산하 단체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오는 10월 인천에서 열리는 총회에서 발표할 논문에서 기존 노력만으로는 온난화 재앙을 막을 수 없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급격히 줄이지 않으면 2040년에는 지구 기온 상승폭이 억제선인 1.5도에 이를 것이라는 게 보고서의 골자다. 보고서는 온실가스가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계속 배출되면, 지구 평균기온이 10년에 0.2도씩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1880년부터 2012년까지 총 0.85도, 10년에 0.06도씩 오른 데 비하면 기온 상승 속도가 3배 넘게 빨라지는 셈이다. 2040년에는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에 비해 1.5도 높아질 것으로 보고서는 전망했다.
세계은행은 온난화에 따른 경제적 재앙도 경고했다. 폭염으로 생산성이 떨어져 전 세계가 치를 비용이 2030년까지 2조 달러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폭염이라는 뉴노멀이 인류의 삶에 미칠 충격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인류가 과거 실수에서 배울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폭염의 강도는 세지고 있지만 희생자 수가 줄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각국 정부가 노인 등에 대한 폭염 대책을 강화한 게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물론 대책을 세우는 것보다는 문제를 미리 막는 게 더 중요하다. 이코노미스트는 전 세계가 기후변화를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