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간 펩시를 이끌어왔던 인드라 누이 최고경영자(CEO)가 자리를 내놓는다. 펩시는 6일(이하 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누이가 오는 10월 3일 사임하며, 이사회 회장직을 내년 초까지 유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마켓워치는 "누이의 퇴장으로 미국은 또 한 명의 보기 드문 여성 CEO를 잃었다"고 지적했다.
누이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인도에서 자란 내가 펩시와 같은 훌륭한 회사에서 일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라고 상상하지도 못했다. 내가 이 회사를 이끌어 온 것은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었다"라고 밝혔다.
인도 국적인 누이는 마드라스 크리스천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으며, 인도경영대(IIM)와 예일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했다. 이어 보스턴컨설팅그룹, 모토로라 등을 거쳤다. 현재 62살인 누이는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다른 기회를 찾고자 펩시 CEO를 그만둔다고 밝혔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2006년 8월 14일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누이는 펩시의 5대 CEO이자 첫 여성 CEO였다. 2000년부터 미국 경제지 포천이 선정한 여성 리더 명단에 꾸준히 이름을 올려왔던 누이는 지난해에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리더 2위를 차지했다.
1994년부터 펩시에 몸담았던 누이는 2001년에는 최고재무책임자(CFO) 자리에 오른다. 당시 펩시는 퀘이커 오츠를 인수하면서 스포츠 음료인 게토레이를 통해 음료시장을 뒤흔들었다. 누이는 탄산음료의 비중을 전체의 20% 수준으로 줄이면서 다양화를 꾀했다. 펩시는 건강에 해롭다는 인식이 퍼진 탄산음료 대신 이온음료와 주스, 차, 스낵 등 다양한 분야의 제품으로 성장세를 키워갔다. 이후 2004년에는 음료 부문에서 코카콜라를 따돌리고 매출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지난 2014년 탄산음료의 부진으로 코카콜라 매출이 2% 줄었을 때 펩시는 오히려 4%의 성장을 이뤘다.
콜라를 전면에 내세우던 코카콜라도 최근에는 탄산음료 매출 비중을 줄이고 다양한 음료를 생산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누이가 만들어 놓은 '펩시의 길'을 따라가는 셈이다.
누이 CEO의 후임으로는 레이먼 라구아르타 사장이 낙점됐다. 라구아르타 사장은 22년간 펩시에 근무했으며, 지난해 9월 사장으로 승진했다.
한편 마켓워치를 비롯한 미국 현지 언론은 포천 선정 500대 기업에서 여성 CEO가 또 한 명 줄어들었다고 지적했다. 최근 미국에서는 유명 기업들의 고위직 여성들이 연속적으로 물러났다. 누이마저 그만두면서 포천 500대 기업에서 여성 CEO는 23명에 불과하게 된다. 이는 5%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며, 지난해의 32명에 비해 크게 줄어든 것이다.
지난해 5월에는 캠벨스프의 CEO였던 데니스 모리슨이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같은 해 4월에는 마고 조지아디스가 장난감업체 매텔의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내려왔다. 휴렛팩커드의 메그 휘트먼과 모델레즈의 아린 로젠펠드 등도 최근 사임한 여성 CEO들이다.
마켓워치는 "더많은 여성 CEO들이 나오기 위해서는 미국이 가야할 길이 멀다. 좀 더 많은 여성이 기업을 이끌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면서 지난 4월 발간된 피유 리서치 센터의 자료를 인용, "2016년말과 2017년 기준으로 S&P1500지수에 포함된 기업의 고위임원(CEO와 CFO) 5700명 중 여성의 비중이 10%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영국 퀸메이대 조직행동 조교수인 안드로마치 아타나소포우로우(Andromachi Athanasopoulou)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여성 CEO들은 회사가 위기 상황에 놓여있을 때나 기용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여성들이 최고경영자 자리를 떠날 가능성이 높은 것은 회사의 재무환경이 안 좋을 때 CEO를 맡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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