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금리 급등 가능성을 둘러싼 우려가 번지고 있는 가운데 신흥시장이 선제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와 통화긴축 보조를 맞춰야 역풍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6일(현지시간) 미국 경제전문방송 CNBC 등에 따르면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4일 한 행사에서 현재 3%를 밑도는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가 곧 5%를 웃돌 가능성이 높다며 이에 대한 대비를 당부했다.
그는 "내 생각에 금리(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가 당장 4%가 돼야 한다"며 "5% 또는 그 이상인 금리를 다룰 수 있도록 대비하는 게 좋을 것이다. 대부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미국에서 주택·자동차 담보대출 금리 등 시중 금리의 기준이 된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가 오르면 시중 금리도 덩달아 뛴다. 금리가 상승하면 빚 상환 부담이 커져 소비·투자 여력이 줄고, 대출을 꺼리게 된다. 경제에 돈이 잘 돌지 않으니 성장세에 제동이 걸리기 쉽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올 초 4년 만에 처음으로 심리적 저항선인 3%를 웃돌았다. 이후 지난주까지 여러 차례 3% 선을 넘나들었지만, 3% 선을 오래 지키지는 못했다. 이날은 2.944%를 기록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가 3% 선을 두고 오락가락하는 게 당장은 경기 전망이 좋지만, 장기 전망이 썩 좋지 않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재정확대 정책 탓에 급증하고 있는 재정적자를 문제삼는 이들이 많다.
이와 달리 다이먼의 금리 전망은 경기 낙관론을 근거로 한다. 그는 지난 6월 CNBC와 한 회견에서 "현재로선 경제적 성공에 진짜 구덩이가 될 만한 게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과 소비자의 경기신뢰지수가 역대 최고 수준이고, 시장은 활짝 열려 있으며 강력한 수요 덕분에 주택 공급난이 한창이라고 설명했다.
다이먼은 지난 5일 행사에서도 미국 경제의 강력한 성장세 덕분에 증시의 강세장이 2~3년 더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증시는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침체가 끝난 2009년부터 올해로 9년째 강세장을 지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슐리 렌 블룸버그 칼럼니스트는 7일 쓴 글에서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가 5%에 이를 가능성에 대비한 신흥국들이 후한 보상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표적인 나라가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이다. 두 나라 증시는 지난달에 각각 6.1%, 9.3% 오르며 세계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주요 신흥국 증시를 반영하는 MSCI신흥시장지수 상승률은 1.7%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인도네시아·필리핀 증시의 랠리 배경으로 여러 가지를 꼽지만, 중앙은행의 과감한 통화긴축에 따른 '안도 랠리'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 지난 3개월 새 기준금리를 1%포인트 올렸다. 필리핀 중앙은행은 올 들어 0.5%포인트 높였는데, 오는 9월 통화정책회의에서 0.5%포인트를 추가 인상할 전망이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에서는 올 들어 각각 35억 달러(약 4조원), 13억 달러가 순유출됐다. 두 나라 통화인 루피아·페소화 가치가 달러에 비해 각각 6.3%, 5.9% 추락하면서 10년 만에 가장 큰 자본유출이 발생했다.
상황이 뚜렷하게 반전된 건 지난주부터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지난 1월 이후 처음으로 두 나라 증시에서 순매수자로 돌아섰다. 블룸버그는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이 글로벌 무역전쟁 포화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앙은행의 통화긴축 공세가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중앙은행이 현지 통화 가치를 떠받칠 것이라는 기대감이 외국인의 투자심리를 긍정적으로 돌려놨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중앙은행이 국내 문제를 따라 움직이는 게 보통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전쟁과 감세, 연준의 통화긴축이 맞물린 현 시점에서는 이런 외부 요인이 통화정책당국에 키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신흥국 중앙은행들이 연준과 보조를 맞추는 게 좋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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