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움내움' 시대정신이 담긴 <농민독본>
농촌계몽운동의 출발은 야학을 통한 문맹퇴치 즉, 우선 마을 문맹자에게 한글을 깨우치는 일부터 시작했다. 또한 매헌은 조국 독립의 지혜를 책에서 찾기 위해 독서운동도 펼쳤다. 야학이 널리 알려지자 학생들이 늘어났다. 이에 매헌은 야학을 갑을 두 반으로 나눠 갑반은 한글, 을반은 역사․산술․과학․영농지식 등을 하루 3시간 정도씩 가르쳤다. 야학 교사로는 매헌을 비롯해 공주 영명학교 출신 정종갑 등 오치서숙의 동접들이 수고했다.
한편 독서활동은 당시 책이 귀해 윤독(輪讀)을 했고, 매월 14일에는 학생들에게 독후감을 발표케 함으로 책의 이해를 확인했다. 한편 매헌은 수시로 학생들에게 신사조(新思潮)에 대한 특강을 통해 시대정신을 일깨움으로 민족의식을 심어 주었다. 매헌은 이 시절에 대하여 <자서약력>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19세에는 피폐한 농촌개척을 목적하고, 마을의 부로(父老)와 상의하여 강당을 세우고 돈이 없어 공부하지 못하는 아동을 모집하여 야학을 한 결과 성과가 매우 좋았다.
.....매년 학예회를 개최하였고 또는 월진회를 조직하여 매월 1회씩 월례회를 열어 신사조를 강연하였다.”
매헌은 야학당을 운영하면서도 틈틈이 자신의 지식과 체험을 총동원하여 야학 교재로 쓸 <농민독본>(農民讀本) 저술에 심혈을 기울였다. 1927년 20세가 되던 해, 매헌의 모든 사상이 집대성된 3권의 유인물 <농민독본>이 마침내 세상의 빛을 보았다. 당시 ‘조선농민사’에서 발행한 <조선농민>이란 책을 참고하여, 매헌이 독창적으로 완성한 이 책에는 농민구제 및 민족부흥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모두 세 권으로 만들어진 <농민독본>의 내용은 제1권 한글편[소리의 갈래, 한글 맞춤법 등], 제2권 계몽편[예절, 격언, 인사말 등으로 조선 청년으로서 가져야 할 마음 자세 및 기본 상식], 제3권 농민의 앞길[농민의 자부심, 농민의 꿈, 농민이 중심이 되는 나라 건설 등 매헌의 진솔한 사상이 담김]로 구성되어 있다.
이와 같이 <농민독본>은 야학의 맞춤형 한글 교재로, 농민과 민족 부흥을 위해 국민들이 숙지해야 할 것들을 담고 있다. <농민독본>이 처음 나왔을 때는 각권 25과 구성됐으나, 아쉽게도 현재는 많은 부분이 소실되어 각권의 앞부분 일부만 남아 있다. 당시 종이가 귀해 휴지나 불쏘시개 등으로 소실된 것으로 사료(思料)된다.
시대정신 ‘세움내움’
필자는 50여 년간 ‘매헌 윤봉길 의사 선양사업’을 해오며, 2009년에 ‘사단법인 월진회’에서 펴낸 <나의 백부 매헌 윤봉길 의사>라는 책을 저술했다. 이 책에 실린 ‘시대정신, 세움내움’에는 <농민독본>에서 매헌이 주창하며 실천하고자 하는 행동강령과 그의 사상이 잘 드러나 있다. 일부를 발췌해 소개한다.
‘세움내움’은 <농민독본>에 수록된 글로, ‘세계를 움직이려거든 내 몸을 먼저 움직여라’의 준말이다. 매헌은 80여 년 전, ‘세움내움운동’을 전개하며 “사람에게는 천부의 자유가 있다. 우리는 자유의 세상을 찾는다. 개인의 자유는 민중의 자유에서 나온다. 상애(相愛, 서로 사랑하자)란 두 글자를 철안(鐵案) 삼아서 굳세게 단결하여, 천 가지 만 가지 낡고 물들고 더럽고 못생긴 것을 무찔러 버리고 새롭고 순수하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며 우리들 세상이 잘 살도록 일을 하자. 그리고 앞으로 앞으로 더욱 더욱 앞으로 전진하며 어서 바삐 경제부흥을 실현하자”고 주창하였다.
‘세움내움운동’의 실천 강령
1. 공부하며 열심히 일을 하자.[창의, 근면]
1.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자.[도전, 개척]
1.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자.[통합, 공생]
1. 구태를 완전히 바꾸며 미래의 꿈을 이루자.[변화, 도약]
1. 식량 자급률을 높이며 생명창고를 지키자.[생명, 안보]
‘세움내움’의 리더십
‘세움내움’에 나타난 매헌의 리더십은 ‘변화(Change), 전진(Advance), 통합(Integration)’으로 요약할 수 있다.
“1.변화 : ‘알렉산더와 같은 야망을 가져라. 그 야망은 철리적도 아니요, 인도적도 아니지만 세계를 정복하려는 그의 야망이야말로 야망다운 야망이다.’ ‘세계를 움직이려거든 내 몸을 먼저 움직여라.’ ‘우리 사회가 유망히 전개되려면, 우리 청년들은 강개한 감정이 흐르는 동시에 건전한 이지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
2.전진 : ‘나는 농부요, 너는 노동자다. 우리는 똑같이 일하는 사람이다. 우리들 세상이 잘 되도록 쉬지 말고 일하며 앞으로 앞으로 더욱 앞으로 전진하여 어서 바삐 경제부흥을 실현하자.’…
3.통합 : ‘내 한 몸을 잘 살게 하기 위하여는 내 사는 농촌을 바로잡아야 되고 내 사는 농촌을 바로잡기 위하여는 마을 사람들의 단합이 긴요하다.’ ‘독립정신이 조선을 살리는 원동력인 것과 같이 공동정신이 또한 조선을 살리는 긴요한 하나이다.’…”
이처럼 매헌이 주창한 ‘세움내움’은 ‘나라를 빼앗긴 국민으로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에 대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시대정신을 제시하며, 이를 극복하는 길은 리더(지도자) 육성에 있음을 광범위하게 밝히고 있다. 매헌의 ‘세움내움’을 오늘날 우리 시대에 접목하면, 21세기 무한경쟁 시대에 당면한 중요한 과제는 전지구의 ‘세계화 추세’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여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세움내움>은 시공을 초월한 영원한 정신으로써 가슴에 새겨야 될 정신이며 운동이다. 약관(弱冠)의 나이로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당시 매헌의 사상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귀중한 책이 많은 부분 소실이 되어 안타깝기 짝이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동안 소실된 것으로 알았던 제1권을 2010년 11월 24일에 찾았다. 당시 매헌전집을 편찬하면서, 편찬위원인 필자가 매헌의 저술과 친필 원고를 일일이 확인하는 과정에서 제3권에 포개진 상태로 보관돼 있던 제1권을 찾은 것이다. 제2권은 당시 야학생 김순용(金順龍)이 보관해오다, 해방 후 매헌의 동생 남의에게 전달해 주었다. 제3권은 1933년 남의가 상경(上京)해 재종형(윤명의)이 운영하던 동일제과에 취업하면서, 재종형에게 맡겼다가 1943년 회사가 폐업할 때 돌려받았다. 현재 <농민독본>은 당시 매헌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史料)로서 보물 제568호로 지정돼 윤의사 사당 ‘충의사’에 소장되어 있다.
농촌운동가로서 웅대한 기개와 야심, 청년지식인 매헌의 사상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농민독본>. 당시 이 책은 야학생들은 물론 마을 주민들의 필독서로 정신 개조 및 농촌계몽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더 나아가 ‘세움내움’ 정신은 100년이 훌쩍 넘은 오늘날, 우리 청소년들이 본받아야 할 중요한 정신으로서도 전혀 손색이 없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시대정신이다.
윤주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부회장
사진=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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