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속 이야기] KBO 최초 영구 결번, 김영신의 56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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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준무 기자
입력 2018-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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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B 베어스, KBO 최초로 영구 결번 지정…국가대표 유망주 김영신, 프로 무대에서 좌절하기까지

[사진=아이클릭아트]


1986년 8월 16일. OB 베어스(두산 베어스의 전신)는 소속 포수 김영신의 등번호 54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KBO 역사상 최초의 영구 결번이다. 영구 결번은 팀에 크게 기여한 선수를 위해 등번호를 타 선수에게 부여하지 않고 비워두는 것을 의미한다.

2018년 8월 현재 영구 결번은 김영신을 포함해 총 14명. 선동열, 김용수, 박철순, 이만수, 장종훈, 송진우, 정민철, 양준혁, 최동원, 이종범, 박경완, 이병규, 이승엽 순이다. 선수들의 면면이 말해주듯 영구 결번은 운동선수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 중 하나다.

김영신의 영구 결번은 다른 경우와 조금 달랐다. 만 24세의 김영신은 전날 경기 고양시 한강 하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부검 결과 사망 시간은 14일 오후 4시. 경찰은 김영신이 더위를 피해 혼자 한강에 나갔다가 급류에 휘말려 변을 당한 것으로 봤다. 그러나 주전 경쟁에서 밀려난 선수가 이를 비관한 것 아니냐는 뒷말도 무성했다. 이튿날 구단은 영결식을 치르고, 애도의 의미로 그의 등번호를 영구 결번으로 처리했다.

김영신은 대학 재학 중이던 1984년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기도 했다. 선동열, 김용수, 이순철, 윤학길 등 당대의 선수들 사이에 이름을 나란히 올린 것이다. 김영신은 이듬해 계약금 1700만원에 연봉 1200만원을 받고 OB에 입단했다. 프로 무대에서도 제 몫을 해줄 유망주로 기대받았다.

하지만 프로의 벽은 높았다. 소속팀마저 '포수사관학교'라 불리던 OB 베어스. 경쟁은 어느 팀보다 치열했다. 김영신은 김경문, 조범현 등 거물 선배들과의 각축전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김영신은 1985년, 1986년 두 시즌 동안 32타수 5안타로 타율 0.156이라는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고, 대부분의 시간을 2군에서 보냈다. 그라운드에서만큼은 언제나 에이스였던 그에겐 견디기 어려운 굴욕이었을지도 모른다.

지난해 KBO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를 신청한 선수는 총 964명. 프로 유니폼을 입을 수 있는 자격은 100명에게만 돌아갔다. 이들 중 몇명이나 프로 무대에 남을 수 있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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