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영상톡]"탄약고 정비고를 바꾼 예술 작품"..캠프그리브스 DMZ 평화정거장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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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성 기자
입력 2018-08-10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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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월 11일부터 10인(팀)이 17개 설치 작품 설치 예술창작전시 개막

  • -김명범 박찬경 정문경 정보경 강현아 박성준 시리얼타임즈(강민준 김민경 송천주) 인세인박 장영원 장용선 작가 참여


송중기와 송혜교가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사랑을 속삭였던 곳, 민간인 통제선 안에 있는 유일한 숙박시설, 54년간 미군이 사용하다 반환했던 곳, 절대 내비게이션으로 찾아갈 수 없는 곳, 통일대교 남단에서 1km가량 떨어진 '캠프그리브스'라는 곳이다.

[장용선 작가가 캠프그리브스에 설치된 'TreasureN37°53'56.8212"E126°43'43.2192"'를 설명하고 있다. ]


8일 캠프그리브스가 비무장지대(DMZ) 평화정거장 사업으로 예술작품이 설치되고 본격적인 관광지로 거듭난다고 해서 찾아갔다.

서울 광화문에서 내비게이션으로 캠프그리브스를 검색해 찍고 무작정 달려갔다. 그러나 강변북로를 타고 일산을 지나 파주를 거쳐 내비게이션이 안내한 곳은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이었다.

캠프그리브스는 민간인통제선 안쪽에 있어 내비게이션으로 안내가 봉쇄돼있다.

급히 차를 돌려 임진각에서 5분 거리인 통일대교 남단으로 갔다. 거기서 헌병대 검문을 거쳐 통일대교를 건너 1km 남짓 달려가니 육군 수색대 부대 옆에 캠프그리브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캠프그리브스에 설치된 드라마 '태양의 후예' 기념 촬영 장소]


과거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로 유명한 미국 101공수 506연대가 주둔하면서 막사와 탄약고로 쓰였던 캠프그리브스는 현재 유스호스텔, 태양의 후예 체험장, 체육관, 산책로 등 한류와 결합한 DMZ관광의 중심에 서 있다.

더욱이 8월 11일부터 예술창작전시가 캠프 곳곳에서 열리면서 가족 단위와 젊은 층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게 됐다.

하지만 아직 캠프그리브스는 일반 관광지처럼 아무 때나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240명 묵을 수 있는 캠프그리브스 유스호스텔에 숙박 예약을 하면 요일에 상관없이 갈 수 있고, 10월까지 합정역에서 출발하는 유료 투어버스 티켓을 티켓몬스터에서 사면 매주 토요일, 일요일에 출입할 수 있다. 매월 첫 번째 토요일, 일요일에는 1박 2일 코스로 파주시티투어가 있는데, 숙박을 캠프그리브스에서 하므로 전시 관람이 가능하다.

이번 예술창작전시는 2019년 7월 31일까지 전시되는 탄약고 프로젝트, 정비고 프로젝트, 미디어 프로젝트와 2018년 10월 31일까지 전시되는 'DMZ 평화의 정원'으로 구성돼, 총 10인(팀)이 17개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참여작가는 김명범, 박찬경, 정문경, 정보경 등 초청작가 4인과 강현아, 박성준, 시리얼타임즈(강민준, 김민경, 송천주), 인세인박, 장영원, 장용선 등 공모선정작가 6인(팀)이다.

[김명범 작가가 캠프그리브스의 탄약고에서 '탄약고 프로젝트: 플레이그라운드 제로'를 설명하고 있다.]


이은경 DMZ정택담당관실 예술총감독은 8일 기자간담회에서 "캠프그리브스를 DMZ 문화예술과 평화의 거점으로 재정립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 장소 자체를 예술작품으로 중화시키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다" 며 "DMZ가 가지고 있는 전쟁 역사적 가치와 평화소통의 가치를 접목해서 캠프그리브스의 장소성을 정립하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캠프그리브스는 판문점과 8km, 남방한계선에서 4km 정도 떨어져 있다. 물론 민통선 안쪽에 있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다.

이은경 예술총감독은 이어 "캠프그리브스가 민통선 안에서 미술관의 기능을 하고 예측하지 못한 장소에 반전을 이루는 컨셉으로 접근하고자 했다" 며 "안보역사 체험이 강조됐던 과거보다는 좀 더 미래 지향적인 공간으로 변모시키고자 했고, 가족 단위의 관람객과 젊은 층이 올 수 있는 문화공간을 형성하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산책하듯 약 1시간의 예술작품 관람

캠프그리브스 정문 앞에 있는 인생인박의 'ISM! ISM! ISM!'을 보고 산책로를 따라 강현아 작가의 '기이한 생태누리공원'을 보면서 올라가면 탄약고가 나온다.

탄약고에서 김명범 작가의 '정비고 프로젝트: 플레이그라운드 제로'를 보고 밑으로 길을 걷다 보면 반원형으로 지어진 퀀셋막사에 정문경 작가의 'Full Square'가 보인다.

길을 따라 좀 더 내려오면 정비고가 나오고 그 안에 다시 김명범 작가의 '정비고 프로젝트: 부유하는 나무'가 있다.

정비고를 나와서 좁은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시리얼타임즈의 미디어작품 '117kb'을 만나 볼 수 있고, 그 뒤로 장용선 작가의 'TreasureN37°53'56.8212"E126°43'43.2192"'과 박찬경 작가의 '미디어 프로젝트: 소년병'이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연결돼 있다.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면 볼링장이 보이고, 그곳에는 박성준 작가의 인터렉션 미디어작품 'YOUR FLAME II'이 있다. 볼링장을 돌아 뒤쪽으로 내려오면 정보경 작가의 '미사일 금지구역'을 마지막으로 예술작품 감상이 끝난다.

[캠프그리브스에 설치된 인세인박의 'ISM! ISM! ISM!']


▶인세인박의 DMZ 평화의 정원 'ISM! ISM! ISM!'

공산주의, 자본주의 등 이념을 뜻하는 단어 'ISM', 이것을 빨리 발음하면 언뜻 모든 것을 잊는다는 '잊음'처럼 들린다.

방문을 환영하는 간판처럼 'ISM ISM 잊음 잊음'을 나열한 작품이 입구에 서 있다. 모든 이념을 잊고 캠프그리브스에 들어오라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인다.

[이은경 DMZ정택담당관실 예술총감독이 캠프그리브스에 설치된 강현아 작가의 '기이한 생태누리공원'을 설명하고 있다.]


▶강현아 작가의 DMZ 평화의 정원 '기이한 생태누리공원'

캠프그리브스 입구 오른편에 마련된 산책로에 들어서면 '등털라인 산양'이 서식하고 있다는 푯말이 보인다.
1953년 휴전 이후 DMZ가 가진 약 65년의 생태 시간 동안 그 안에서 살아온 동물과 식물을 작가가 상상력으로 구성한 것이다.

철조망에는 동·식물을 설명하는 자료와 근처에 있는 군부대의 마크가 매달려 있다.

산책로는 원래 캠프그리브스를 경계 짓던 철조망 바깥쪽에 새로운 철조망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김명범 작가가 캠프그리브스의 탄약고에서 '탄약고 프로젝트: 플레이그라운드 제로'를 설명하고 있다.]


▶김명범 작가 '탄약고 프로젝트: 플레이그라운드 제로'

산책로를 따라 도착한 곳은 건물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능선 형태로 위장한 탄약고 두 동이다.
각각 두꺼운 철문으로 닫혀 있었고, 옛날 방식 그대로 쇠사슬로 연결된 도르래를 작동하니 미닫이 형식의 철문이 서서히 입을 벌렸다.

탄약고는 전쟁 무기를 보관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굉장히 차가운 물성을 가진 장소이다.
이곳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놀이터와 사슴이 뛰어노는 동물원이 생겼다.

탄약고 천장에는 2개의 그네가 달렸고 철로 만든 미끄럼틀은 은색으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 금방이라도 타 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특히 미끄럼틀 위에는 캠프그리브스에서 쓰던 하얀색 수건이 마치 전쟁을 끝내자는 항복 표시처럼 나부낀다.

또 다른 탄약고에는 박제된 사슴이 머리에는 뿔 대신에 나뭇가지를 이고 관람객을 맞이한다. 나뭇가지를 고정하기 위해서 천장에 연결한 낚싯줄은 마치 쏟아지는 햇빛처럼 환상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김명범 작가는 "미군 기지에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놀이 공간과 동물원을 만들었다" 며 "새로운 미래가 오려면 에너지 충돌이 필요하고 전혀 다른 성질의 것들이 부딪쳐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고 설명했다.

[캠프그리브스에 설치된 정문경 작가의 'Full Square']


▶정문경 작가의 DMZ 평화의 정원 'Full Square'

탄약고를 나와 다다미가 깔린 산길을 걸어 내려가니 미군들이 숙소, 사무실 등 다용도로 섰던 퀀셋막사가 보인다. 정문경 작가는 막사 창살에다가 옷을 덕지덕지 매달아 이 공간을 새롭게 탄생시켰다.
헌 옷들은 인간 존재의 흔적, 시간의 흐름과 개인의 기억을 대변한다. 창문에 꽉 찬 옷들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소통하고 타협하는 평화의 몸부림이 된다.

[캠프그리브스 정비고에 설치된 김명범 작가 '정비고 프로젝트: 부유하는 나무' ]


▶김명범 작가 '정비고 프로젝트: 부유하는 나무'

미군이 썼던 정비고는 작가의 창작스튜디오로 변신했다. 차량을 정비하던 공구 대신 선반 위에는 예술 작품을 만드는데 쓰이는 공구들이 놓여 있다. 정비고 중앙에는 뿌리를 드러낸 말라비틀어진 나무가 새빨간 열매들을 매달고 천장에 붙어 있다. 말 그대로 '부유하는 나무' 이다.

제주도 산 죽은 나무에 풍선을 붙여 새로운 생명을 부여한 것이다. 버려진 캠프그리브스 공간이 문화예술을 통해 새로운 재생, 생명을 주고자 하는 장소성과 궤를 같이하는 작품이다.

[캠프그리브스에 설치된 시리얼타임즈의 '117kb']


▶시리얼타임즈(강민준 김민경 송천주)의 DMZ 평화의 정원 '117kb'

누구나 컴퓨터로 '지뢰 찾기' 게임을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117kb'은 지뢰 찾기 게임 형식을 빌린 인터렉션 미디어 작품이다.

관람객이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서 센서가 작동하고 지뢰를 밟으면 '삐' 소리와 함께 지뢰가 터진다. 지뢰가 터질 때는 실제 주마등처럼 일상의 장면들이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진다.

[캠프그리브스에 설치된 장용선 작가의 'TreasureN37°53'56.8212"E126°43'43.2192"']


▶장용선 작가의 DMZ 평화의 정원 'TreasureN37°53'56.8212"E126°43'43.2192"'

장용선 작가의 작품이 설치된 퀀셋막사에 들어서면 눈보다 코가 먼저 반응한다.
캠프그리브스 주변에 있던 철조망과 강아지풀이 뭉쳐서 만든 작품이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하지만, 바닥에 깔린 풀에서 올라오는 풀냄새에 묻히고 만다.
알싸한 풀 향기가 공간을 지배하며 들어서는 관람객의 모든 감각을 차단해 버린다.

작품 제목인 'TreasureN37°53'56.8212"E126°43'43.2192"'는 캠프그리브스의 좌푯값이다. 이 안에 모든 것은 캠프그리브스를 축소한 것이며, 무엇보다 소중한 것을 의미한다.

장용선 작가는 "DMZ에서는 풀들이 철조망을 징검다리 삼아 자라는데 인간들이 늘 가시거리를 확보하려고 제초작업으로 잘라버린다" 며 "죽은 풀 위에서 생활하는 새로운 생명체를 형상화해서 씨앗처럼 호흡하는 연출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캠프그리브스에 설치된 박찬경 작가 '미디어 프로젝트 소년병']


▶박찬경 작가 '미디어 프로젝트 소년병'

전쟁이라는 장소성이 강한 캠프그리브스에 북한 군복을 입은 소년병이 등장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그 소년이 한없이 여리고 결국 죽음에 이른다면, 의외의 연출로 더욱 강렬한 시적, 서정적 인상을 남긴다.

박찬경 작가의 16분짜리 미디어 작품은 작가의 어머니가 실제로 어린 인민군을 만나 여린 이미지에 깜짝 놀란 것에서 출발했다.

작품에서 소년병은 산속을 헤매며 뭔가를 찾기도 하고, 라디오를 듣는가 하면 가상의 적에게 총을 쏘기도 한다. 목적 없이 헤매던 소년병이 어디선가 날라온 기타를 잡고 북한의 대중가요 '휘파람'을 부를 때는 뭔가 다른 공간을 진입한 듯한 초현실적인 느낌마저 든다.

흔히 북한이라고 하면 강한 군인의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작가는 소년병을 통해 북한의 가장 여린 이미지를 끄집어냈다.
 

[캠프그리브스에 설치된 박성준 작가의 'YOUR FLAME II']


▶박성준 작가의 DMZ 평화의 정원 'YOUR FLAME II'

캠프그리브스의 가장 높은 곳에는 공연장으로 쓸 만큼 큰 공간의 볼링장이 있다.

이곳에 설치된 박성준 작가의 'YOUR FLAME II'는 전쟁의 한 복판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인터렉션 미디어 작품이다.

관람객들이 어두운 볼링장에 들어서면 안개가 자욱하게 깔리면서 대포와 총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대형 스크린에서는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의 화면이 나오면서 건물 전체가 전쟁터로 변한다. 들어서는 관람객 수가 많아질수록 소리는 더 격해지고 커진다.

[캠프그리브스에 설치된 정보경 작가의 '미사일 금지구역']


▶정보경 작가의 DMZ 평화의 정원 '미사일 금지구역'

볼링장 뒤편으로 돌아 내려오면 야외녹지 정비 공간이 나오고 '미사일금지구역'이라는 표지판 10개가 몰려있다.

캠프그리브스 곳곳에 한 개씩 있던 표지판이 이곳에 모여 직접적이고 단언적인 평화 선언을 하는 듯하다.

작가는 '미사일금지구역' 표지판을 마치 주변에 있는 도로표시판처럼 일상적으로 느껴지게끔 작업 했다.

그동안 땅굴을 보거나, 전쟁 유품을 관람하던 안보관광이 장소의 특이성과 함께 평화를 기원하는 예술관광으로 거듭나고 있다. 특히 캠프그리브스는 지난해 총 2만3천116명의 관광객이 다녀가면서 그 중심에 서 있다. 더욱이 임진각 관광지와 캠프그리브스를 곤돌라로 연결하는 사업이 계획되고 있다.
이 사업이 완료되면 관광객들은 더는 불편한 통일대교를 이용할 필요가 없다. 유리로 된 곤돌라에서 임진강을 감상하며 캠프그리브스로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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