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세계 조폐시장의 강자로 떠올랐다. 서방이 주도하던 시장의 3분의 1을 장악했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3일 중국 전역에 있는 조폐공장이 정부가 정한 올해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완전가동에 가깝게 돌아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큰 도시는 물론 시골에서도 스마트폰을 활용한 모바일 결제가 흔한 중국에서 때 아닌 돈 찍기가 한창인 건 외국에서 주문이 밀려들고 있어서다.
중국 국유 조폐회사인 중국인초조폐총공사(CBPMC)의 소식통들은 해외 주문 때문에 올해 할당량이 이례적으로 많다고 전했다.
중국에서는 최근 모바일 결제가 일반화하면서 위안화 지폐 수요와 사용이 급격히 줄고 있다. 당연히 조폐공장들은 일거리가 부족했다.
분위기가 갑자기 바뀐 건 올 초부터다. 해외에서 조폐 주문이 들이닥쳤다. 해외 수요는 대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주도하는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 참여국에서 나온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중국은 시 주석이 2013년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천명한 지 2년 만에 네팔의 100루피 지폐를 대신 찍어주면서 해외 조폐사업을 본격화했다. CBPMC는 이후 태국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말레이시아 인도 브라질 폴란드 등과 계약을 맺었다.
한 소식통은 알려진 나라는 '빙산의 일각'이라며 이미 계약을 맺었거나 맺을 계획인 나라가 훨씬 더 많다고 귀띔했다. 국가안보 위험을 초래하거나 국내에서 불필요한 논란을 촉발할 수 있다는 이유로 중국과 조폐 계약을 맺은 사실을 공개하지 않는 나라가 많다는 설명이다.
그동안 세계 조폐시장은 영국의 드라루를 비롯한 서방 기업이 주도했다. 드라루와 거래하는 나라만 전 세계 140개국이 넘는다. 독일 G&D, 미국 크레인커런시도 화폐 수출로 유명하다. 드라루는 최신 연례 보고서에서 CBPMC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3분의 1로 자사의 4배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CBPMC는 중국 내 10여 개 공장에서 지폐와 동전을 생산한다. 고용인력이 1만8000명이 넘는다. 규모로는 세계 최대다. 이에 비해 미국 재무부 산하 조폐국은 공장이 2개, 인력은 10분의 1밖에 안 된다. 드라루의 인력도 3100명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세계 조폐시장을 장악한 건 이 나라의 국제적 위상과 영향력을 방증한다고 지적한다.
후싱더우 중국 베이징이공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 나라가 (중국에) 지폐 제조를 맡기려면 중국 정부에 대한 상당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며 "화폐는 국가 주권의 상징으로 이 사업은 (두 나라가) 신뢰는 물론 통화동맹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SCMP는 중국이 조폐 능력을 핵폭탄 프로그램만큼 국가안보에 중요한 것으로 여긴다고 지적했다. 적국이 위조지폐를 유통해 경제를 뒤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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