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현대의 내비게이션처럼 목적지를 찾아가는 지도가 있었을까? 19세기에 작품인 '설정이정표'는 서울과 충청도 음성이라는 특정 고을을 잇는 도로만 표시한 당시의 내비게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은 '지도의 나라'라고 불릴 만큼 풍성하고 방대한 지도를 남겼다. 조선 지도를 새롭게 조망하고 지도라는 독특한 매체 속에 담긴 수많은 삶의 흔적을 살피는 전시가 열렸다.
국립중앙박물관은 8월 14일부터 10월 28일까지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 및 중근세관 114호실에서 특별전 '지도예찬- 조선지도 500년, 공간·시간·인간의 이야기'를 개최하고 있다.
이번 특별전은 조선시대 지도를 주제로 한 최초의 대규모 종합 전시로 '조선방역지도'(국보 제248호)를 비롯해 '동국대지도'(보물 제1582호), '대동여지도 목판'(보물 제1581호) 등 지도와 지리지 260여 점(국보 1건, 보물 9건 포함)을 선보인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은 지난 13일 기자간담회에서 "지도를 보면 우리나라가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조상들이 생각했고, 우리 강토에 어떻게 가치를 뒀는지를 알 수 있다" 며 "금년도가 정부 수립 70주년인데 조선지도 전을 통해 정체성 확립하고 우리나라가 얼마나 자랑스러운 나라인지를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전시는 총 4부로 구성되었다. 지도가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속성 즉 공간을 담아낸 지도, 시간을 담아낸 지도, 인간의 삶을 담아낸 지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표적인 지도 제작자를 중심으로 '지도 연대기'를 구성했다.
1부에서는 세계를 담은 지도, 나라를 그린 지도, 경계와 외국을 그린 지도, 천문에 대한 지도를 소개한다.
전시장 입구에는 일본 류코쿠대학에 소장돼 있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대형 스크린에서 3D 영상으로 전시됐다.
이 지도는 중국을 중앙에 배치하고 동쪽으로는 조선과 일본, 서쪽으로는 아라비아, 유럽, 아프리카에 이르는 구대륙 전체가 담겨 있다.
이 작품을 통해 조선 전기에 천하의 관점이 어디까지 퍼져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유럽과 아프리카까지 포함하는 매우 큰 관점에서 중심에 중국이 크게 자리 잡고 있고 조선이 그 다음 제2의 국가로서 큼직하게 자리하고 있다.
대표적인 조선 시대의 세계지도인 '천하여지도'와 '천하대총일람지도'에서도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세계질서를 표현했다.
결국 중국을 중심에 두고 조선이 함께 동아시아를 끌어가는 형상이다.
'천하도'는 세계지도를 표방하고 있지만,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오로지 조선에만 있는 지도이다.
원형의 천하도는 안쪽에 대륙이 있고 그 주위를 바다가 둘러싸고 있다. 이후 다시 대륙이 있고 또 그 주위에 바다가 보인다.
가장 안쪽의 대륙에는 중국, 한국, 일본 등 현실에 존재하는 나라가 있고, 바깥쪽 대륙에는 중국의 고대 사서인 산해경에 전설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눈이 하나만 있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 팔이 긴 사람들이 사는 나라 등 여러 신기한 나라들이 존재한다. 이는 당시 과학 지식이 뒤떨어진 것이 아닌 풍수지리 사상 혹은 신선 사상, 도교 사상 등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세계 질서 안에서 담아 놓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해좌전도'는 19세기 조선에서 굉장히 유명했던 지도로 지도와 지리지의 결합체이다.
국토는 물론 행정, 국방, 교통의 정보들이 포함됐고 여백에는 역사적인 이야기도 담겨있다.
삼국 시대에서 고려 시대까지 각각의 행정구역들을 표시해 놔서 우리나라 역사가 어떻게 지나가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고, 이름난 산과 섬들을 표시해 많은 정보를 제공해 준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소장하고 있는 국보 제248호 '조선방역지도'가 외부에서 전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지도를 통해서 실제 조선이 고려시대에 이어서 지리정보를 흡수하고 종합적인 수집 활동들을 활발하게 진행했었음을 엿보게 한다.
조선 전기의 지도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조선방역지도'는 조선 전기 지도의 원형을 담고 있다는 데 그 중요성이 있다.
지도에는 전통의 오방색에 따라서 남쪽은 적색, 북쪽은 흑색, 동쪽은 청색, 서쪽은 백색 그리고 중앙은 황색으로 행정구역을 표시했다.
이는 실제 이 지도가 관람용이나 일반적인 정보가 아니라 통치와 행정에 이용됐다는 여러 가능성을 제시한다.
조선시대의 유명한 화가인 공재 윤두서는 초상화만 그린 것이 아니라 지도에도 관심이 많았다. 윤두서가 그린 '동국여지지도'는 '조선방역지도'와 거의 비슷한 형태를 지니고 있으나, 단순히 지역만 표현한 것이 아니라 산줄기든가 여러 가지 입체적인 모습을 잘 표현했다.
이는 당시 국가가 만든 지도뿐만 아니라 개인들이 여러 지리정보를 이용해서 이 전의 지도를 필사하고 거기에 더 중요한 지리정보를 덧붙임으로써 지도를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대동여지전도'는 김정호가 만들었던 '대동여지도'를 줄여서 만든 것으로 보인다. 한눈에 국토 전체를 빠르게 파악하려는 수요자를 고려한 것이다.
지도 오른쪽에는 여백을 이용해 한양이 한강을 중심으로 영원토록 번영할 곳임을 밝히는 감동적인 메시지도 담겨 있다.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는 조선이 중국을 중심으로 해서 다른 주변지역을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 잘 알려주는 지도이다.
이 지도에서 백두산 아래쪽에 조선과 청의 경계선을 표시한 '백두산정계비(1712)'가 그려져 있다.
우리 영토에 대한 의식과 함께 북방 지역에 대한 중요성을 부각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의 입장에서는 언젠가 청이 물러나게 되면 북방지역 영토를 회복할 것이고, 북방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기 위해 나온 지도라고 볼 수 있다.
조선 시대에는 천문 지도도 많이 만들어졌다. 하늘의 이치를 잘 알고 이를 받들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곧 위정자의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별자리들과 태양의 주가 등을 담아낸 천문 지도들이 조선 전기에서 후기까지 다양하게 만들어졌다. '천상열차분야지도', '신법천문도'가 여기에 해당한다.
▶2부, 시간을 담은 지도에 관한 이야기
공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지역의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지도 위에 역사를 기록하는 전통이 생겼고, 조선 지도에는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졌다.
'조선팔도고금총람도'는 조선 사람들이 바라봤던 과거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왕이 사는 한성을 중심으로 한 도성은 좀 더 중요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크고 자세하게 그렸고, 그 지역에 살았던 충신들 혹은 여러 가지 업적을 세운 이들의 내용을 지도 안에 빽빽이 적어 넣었다. 또한 한산도 부근에는 이순신 장군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동여비고'라는 지도책은 삼한시대, 고려시대를 이어서 조선의 역사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책에는 독도를 소유했던 우산국 이야기도 실려 있어서 역사적으로 논쟁적인 이야기가 나올 때 동여비고 안에 나와 있는 지형이라든가 지리정보 등 사실적인 측면을 가지고 논박할 때가 있다. 그래서 동여비고는 중요한 역사 자료로 여겨진다.
▶3부, 인간을 담은 지도에 관한 이야기
지도에는 단순하게 지형과 시간만을 담은 것이 아니라 실제 삶 속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가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들어가 있다.
통치를 잘하려는 바람, 국방을 튼튼히 해서 나라를 지키려는 바람, 태평성대를 추구하는 바람 등 당시 조선 사회의 다양한 이상들이 드러난다.
'전라도 무장현 지도'는 지도라고 볼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회화 작품으로 보인다.
고장을 보다 아름답게 그려서 이곳이 마치 태평성대 이상향을 펼칠 것처럼 느껴지게 그린 지도들은 그 지역을 통치하는 관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실제로 '목민심서'를 썼던 정약용도 관리가 파견되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로 지도 만들기를 꼽았다.
정상기의 '동국대지도'는 '대동여지도'가 만들어지기 위한 출발점이 됐던 지도로 볼 수 있다.
조선 전기의 불명확한 국방의 영역들이 '동국대지도'에 와서 압록강과 두만강에 대한 만곡부가 좀 더 확실해진다.
정상기는 정확한 지도를 위해서 100리(약 40km)를 1척으로 삼아서 온 국토에 대한 영역을 정리했다.
지도에는 행정적인 군현의 모습들뿐만 아니라 산줄기와 강줄기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이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정상기는 또한 지도안에 여러 가지 발문들을 놓아서 지도를 만드는 방법, 이용하는 방법을 상세히 써넣었다.
이후 매우 많은 사람이 '동국대지도'를 따라 그렸고, 그러한 지도들을 '동국지도 계열'이라고 불렀다.
'청구관해방총도'는 국방에 관한 지도로 바닥에 지도를 쭉 펴놓고 지형지물을 표현하면서 회의하기 위해서 가로로 길게 그렸다.
즉 북쪽을 지도의 상단에 배치하고 남쪽을 지도의 하단에 배치하는 일반적인 지도와 달리 동쪽을 지도의 상단에 배치하고 서쪽을 지도의 하단에 배치했다.
'설정이정표'는 당시 조선의 내비게이션이라고 볼 수 있다. 서울에서 충북 음성까지의 노정을 그린 지도로 길을 따라 최단거리 부분만 표시했다.
독도와 울릉도를 함께 실은 가장 오래된 지도인 '동람도'도 흥미롭다.
1531년 '신증동국여지승람'이라고 하는 지리지가 만들어질 때 그 안에 부도 형식으로 지도가 들어가게 된다.
이 책 속에 들어있는 '동람도'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판 지도로 전국지도와 팔도지도 등 9장의 지도로 구성됐다.
이 중 전국지도와 강원도 지도에 지금의 독도가 우리 영토로 명기돼 있다.
전시장 맨 뒤편에 마련된 특별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로 약 3.8m, 세로 약 6.7m의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1861) 원판 전체가 바닥에 깔려 있다.
대동여지도는 조선의 국토를 남북 120리(약 47km) 간격의 22층으로 나누고 각층의 지도를 1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한 권의 책은 동서 80리(약 31km)를 기준으로 펴고 잡을 수 있게 제작해 편리하게 볼 수 있도록 했다.
'대동여지도'는 오늘날의 어떤 실측 지도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다양한 지형과 지리정보가 담겨 있다.
1만2000개에 가까운 지형정보가 담겨있을 뿐만 아니라 산줄기와 강줄기 크기와 중요도에 따라서 섬세하게 표현돼 있다.
특히 도로에는 10리(약 3.9km)마다 점을 찍어 독자가 직접 거리를 계산할 수 있도록 했다.
▶4부, 대표적인 지도 제작자를 중심으로 '지도 연대기'
중근세관 114호실에 들어서면 바닥에 정상기의 '동국대지도'를 5.3배 확대해서 약 14m에 이르는 지도가 그려져 있다.
스마트폰으로 앱을 설치해서 특정 지역에 위에 서면 증강현실(AR)를 이용한 다양한 정보를 볼 수 있다.
'플레이스토어'에서 '지도예찬'이라는 앱을 찾아 설치하고, 서울 지역 위치에 서면 '서울 지도 모아보기'라는 메시지가 뜬다. 이것을 클릭하면 도성도를 비롯해 서울에 관련된 다른 정보가 등장한다. 금강산에 가서 앱을 실행하면 금강산과 관련된 여러 회화 작품들이 등장한다. 백두산에서 실행하면 다양한 지도에 등장한 여러 백두산을 볼 수 있다.
4부 공간에서는 조선의 지도가 어떤 궤적을 따라서 발전해 왔는가를 총정리한다.
조선 전기 때는 본격적인 지리지 편찬사업을 했으며, 양난(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에는 국가 비상기구인 비변사가 제작했던 방안지도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조선 후기에는 정상기, 신경준, 김정호로 이어지는 지도 제작자를 중심으로 조선 지도의 황금기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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