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이 재무적투자자(FI)에 약속한 기업공개(IPO) 시점을 넘긴 지 3년 만에 결국 IPO를 공식화했다. IPO의 가장 큰 문제로 꼽히는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의 지분율 희석 우려에 대해서 뚜렷한 해답을 내놓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현 시점에서 교보생명이 상장을 단행할 경우, 글로벌 건전성 규제 강화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자금을 확충하면서도 오너의 경영권을 지킬 수 있는 묘안을 내기가 쉽지 않다. 시점이 좋지 않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보생명은 FI의 요구에 등을 떠밀려 IPO를 진행해야 하는 상태다. 결과적으로 과거 백기사 역할을 했던 FI가 역설적으로 경영권의 위협이 되고 있는 셈이다.
21일 보험·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최근 교보생명은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발송하면서 IPO를 공식화했다. 현재 교보생명은 주관사로 국내외 각 1개사를 선정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교보생명이 IPO 실행 의지 여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일단 교보생명이 배포한 RFP의 목적부터도 확실치 않다. 해당 RFP에는 'IPO 등을 통한 증자 주관회사 선정을 위한 제안서 제출 요청'이라고 명시돼 있다. 때문에 IPO보다 증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시에 교보생명이 그동안 상장을 미뤄왔던 주요 이슈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의문도 제기된다. 상장을 단행하면 대주주가 경영권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상장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교보생명 IPO의 어려운 점 중 하나는 오너인 신 회장의 경영권 방어 문제다. 교보생명은 과거 2대 주주였던 대우그룹의 파산으로 불거진 지배구조 안정화 문제를 아직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신 회장 개인 지분율만 45%, 특수관계인 지분율까지 합치면 64.5%에 달했던 지배력은 현재 특수관계인 지분율을 모두 합쳐도 36.91%에 불과하다. 만약 IPO를 통해 신주를 발행할 경우 지분율은 더 하락할 수밖에 없다.
지금 상황만 놓고 보더라도 현재 교보생명의 지분 50% 이상을 코셰어(Corsair)계 펀드와 어피니티 컨소시엄 등 10여곳의 FI들이 보유하고 있다. 이들이 신 회장을 백기사로서 지지해주고 있기에 현재의 지배구조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IPO가 진행되면 대부분 FI의 엑시트(투자금 회수)가 점쳐진다. 대주주가 보유한 것보다 많은 주식이 시장으로 쏟아지거나 제3자에게 매각될 수 있다는 의미다. 어느 쪽이던 교보생명의 경영권을 노리는 자가 적대적 M&A를 시도하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다.
즉, 대주주 입장에서는 IPO 자체가 경영권 위협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특히 신주 발행 물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위협이 커지게 된다.
그렇다고 교보생명이 신주를 발행하지 않고 IPO를 진행하기도 어렵다. 현재 국내 보험사는 글로벌 건전성 규제 강화 탓에 자본확충 리스크가 여느 때보다 커진 상황이다. 실제 교보생명은 지난달 이사회에 국제회계기준(IFRS17) 등 도입에 따른 시뮬레이션 결과 적게는 2조, 많게는 5조원의 자본확충이 필요하다고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보생명은 지난해 해외 신종자본증권 발행 등으로 5억 달러(약 550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으나 이 방법만으로 수조원의 자금을 확충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만약 IPO를 진행하게 된다면 신주를 발행해 최대한 자본을 확충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결과적으로 대주주 입장과 회사의 자본확충 욕구가 서로 상충된다. 미래의 경영권 위협과 건전성 리스크를 정확히 예단할 수 없어 중간지점을 찾기도 쉽지 않다. 교보생명 입장에서 IPO는 매우 어려운 작업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보생명이 IPO를 진행해야 하는 것은 결국 FI와의 약속을 이행해야 하는 탓이다. 대주주인 신 회장이 IPO를 약속한지 3년 가까이 되는 상황에서 대안 없이 계속 미루기는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교보생명은 지난 2012년 어피너티 컨소시엄 등을 우호 세력으로 끌어들이면서 2015년 9월까지 회사를 상장해 엑시트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업황과 회사 상황이 여의치 않아 약속됐던 IPO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교보생명은 다시 IPO를 약속하면서 FI의 이탈을 한 차례 더 막았다. 그 결과 최초 약속보다 3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IPO가 미뤄져 왔다. FI들이 마냥 교보생명에 시간을 주면서 엑시트를 미루기가 한계에 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IB업계 관계자는 "현재 FI들은 신 회장에게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FI들이 신 회장을 배려해 풋옵션을 행사하지 않고 있지만 마냥 기다리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보험사 관계자는 "상장을 하면 신 회장의 지배력이 흔들린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FI와의 약속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상황"이라며 "사실상 지금까지 백기사 역할을 했던 FI가 역설적으로 경영권 위협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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